엑시터와 앤도버

엑시터 졸업식 (2007년 6월)

박중련 2009. 2. 19. 12:38

나는 엑시터 역사 소사이어티와 피바디 기숙사 사이의 작은 길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단상의 오른쪽에는 성姓이 A에서 J까지 시작하는 학생들이, 그와 반대 쪽에는 J부터 Z까지의 성을 가진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단풍나무와 참나무 그늘 밑에서 절반의 급우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학생들과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남학생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지금 사실상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학생들 중 대다수가 9학년의 힘든 과정과 사춘기의 혹독함을 이겨냈고, 지금 나와 함께 어른의 모습으로 서있다. 우리가 한때 모두 14, 15, 16세 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엑시터를 떠날 우리의 미래 세계가 임박했듯이, 그 몇 년이 빠르게 지나간 추억과 같이 느껴졌다. 졸업을 하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제공되는 느슨함으로부터 더 이상 보호나 안식처를 제공받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가장 훌륭한 고등학교들 중에 하나인 이곳에서 다듬어진 학생들로서, 엑시터에서 배운 모든 것을  삶속에서 바르게 나타내며 이끌어 갈 준비를 한 채로 함께 서 있었다.

 

관악대가 우리에게 앞으로 행진할 신호를 알리자, 비록 막지는 못했지만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선생님, 코치 그리고 직원들이 에워싸서 만든 조그마한 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 앞을 지나가자 어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환호를 질렀으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면서, 이 순간이 그들이 베푼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밴드가 음악을 마치자, 연단 옆의 급우들 사이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머리를 들어 청중들을 응시하자, 친구들, 가족들, 선생님들의 얼굴로 형성된 ‘얼굴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비록 300여 졸업생들 중에 한 명이었지만, 나는 청중들의 눈이 모두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내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나의 두 급우들이 낭독하는 ‘졸업식을 위한 조사’와 ‘소개’에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목사가 될 육상팀 동료가 졸업식을 시작하는 기도를 했다. 그 뒤를 이어, 기숙사 친구인 졸업반 학생회장이 개막 연설을 했다. 그 후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섰고, 내 기억에 그들은 모두 그 순간과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했다. 내가 엑시터 졸업생 가족의 일원으로 공식적으로 추대되는 순간이 결국 찾아왔다. 전례관이 우리를 연단으로 안내해 졸업장을 받도록 한 줄로 서게 하자,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연단에 걸어 올라가서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정지한 상태로 있었으나 드디어 내가 무대를 밟을 차례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급우인 사라 벌하이Sara Berhie가 내 차례 전의 이름들인 제니퍼 오Jennifer Oh, 제이슨 올로프Jason Orloff를 읽어 나갔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연단 옆에 서서 사라가 내 이름을 호명하길 기다릴 때, 내 심장은 조절할 수 없는 속도로 급속히 뛰었다. 내 오른쪽에는 이미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과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곧 오게 될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나의 왼쪽에는 나의 친구들,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급우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 행사는 내게 여러 심오한 생각과 느낌을 갖게 했지만, 그 때 내 마음 속에 반복되었던 오직 한 가지 생각은 ‘무엇을 하든 절대 넘어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리어 질 때, 시간이 느리게 움직일 것이고, 그 모든 순간순간을 음미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 이름이 호명되고 팅그리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과정은 아주 순식간에 끝났다. 졸업장을 받고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솔직히 나는 조금 실망했다. 내가 졸업장을 받을 때 하늘에 불꽃놀이를 해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너무 빨리 끝나자 슬픈 느낌마저 들었다. 10초간의 명상 같은 느낌이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 이미 졸업장을 받은 급우들 옆에 앉았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도 흥분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졸업식이 ‘무대 위를 걸어 올라가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식을 함축해 놓은 종이 한 장을 받아오는 행동’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내가 사랑하게 된 친구들과 함께 엑시터 이후의 생활로 진입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즐거운 시간에 친구들 옆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멋진 헤어지는 인사와 낙관적인 시작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요즈음 나는 내 방에서 컴퓨터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책을 읽을 때, 벽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졸업장을 보게 된다. 글자 그대로, 그것은 내가 엑시터에서 보낸 시간의 상징이다. 그러나 졸업장을 둘러싼 액자의 장엄한 자주색과 내 이름을 세긴 멋진 필체보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졸업식, 마지막 주간, 나의 4년간 학창생활의 추억들이 그 종이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경험기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