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이다. 나는 구겨진 셔츠에 넥타이를 헐렁하게 맨채 교실로 뛰었다. 엑시터에서의 마지막 날 수업을 듣기 위해서 였는데, 옷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제 새벽 3시까지 기숙사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비디오 게임을 하고, 졸업앨범에 사인을 했으며, 휴게실에서 축 늘어진 채로 보냈다. 그리고 2시간 후인 오전 5시에는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아침식사를 했다. 그래서 교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매우 치쳐 있었다. 이 날 있었던 마지막 수업들에서 나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마 이날은 평소 50분 수업이 25분 만에 끝났고, 더 이상 숙제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는 이날 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댄스파티에 대한 흥분감 때문에 그 기분이 부분적으로 희석되었을 수도 있다.
엑시터는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 밤에 졸업반 프롬(댄스파티)을 열어준다. 그 이유는 졸업반 학생들이 초청한 후배들을 배려했기 떼문이다. 여하튼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다수의 여학생들이 허둥지둥 인근 미용실로 달려갔다. 여학생들은 프롬 전에 화장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오후 내내 분주했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여자의 가슴에 달아줄 꽃과 부토니어를 가져오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밤이 될 때까지 캠퍼스 주위를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엑시터의 프롬은 공립학교들과는 달리 학교 전통이 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도서실 앞 잔디밭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1시간쯤 모여있었다. 남학생들이 턱시도를 그리고 여학생들이 비싼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웬 지 이상해 보였다. 우리는 도서실 앞 사우스 콰드South Quad를 가로 지르는 긴 길에서 서성거리며 있었는데, 우리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옷은 주위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대형버스 8대가 우리를 프롬이 열리는 애킨슨 컨트리클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도착했다. 그곳까지 1시간 정도 걸렸는데, 나는 버스 안에서 거리가 좀 더 가까웠으면 하고 마음을 졸였다. 클럽에 도착하자 나는 파트너와 함께 프롬장소인 그랜드 볼룸으로 향했다. 그러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더 계속 나아가기 전에 앞에 한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샹들리에로 뒤덮인 천장과 우아하게 장식된 테이블들이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웅장한 모습으로 넓은 공간을 채운 우고 있었다. 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자 모든 것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도서관 앞에서는 어색해만 보였던 우아하게 차려입은 커플들의 옷이 그제서야 제 빛을 발했다.
그날 밤은 뷔페 디너로 시작했다. 메뉴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지만 맛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식사 후에는 커플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특별한 순서가 없었다. 어떤 커플들은 컨트리클럽과 파티오(옥외 테라스)위를 걸었으며, 나는 파트너와 함께 개울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걸었다. 그 개울물과 돌 구조물은 불빛에 반사되어 찬란한 광채를 띠었다. 많은 커플들이 테이블에 앉아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그날 밤 마음 깊숙이 떠오르는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DJ가 큰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주자 대부분의 커플들이 댄스 플로어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의 음악은 최신 유행곡부터 80년대 히트송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생동감이 넘쳤고, 중간중간 느린 곡도 몇 개 잘 섞여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4년을 지내면서 알게된 엑소니안들은 파티를 즐기거나 춤을 잘 추는 타입이 아니다. 그러나 음악이 울려 퍼지자, 그들의 억제된 감정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듯 했다. 나는 춤을 못 춘다고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사람이지만, 이번이 친구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수줍음은 털어버렸다. 대신 전력을 다해 나아가 음악에 맞추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모습은 매우 어리석어 보였을 것이다. 리드미컬한 면에서 부족한 나의 동작마저 그날 밤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불행히 엑시터 학생들도 시간의 힘을 부정할 수 는 없었다. 새벽 1시가 되자 DJ는 마지막 노래로 비타민C의 ‘친구는 영원하다Friends Forever'라는 곡을 들려주었다. 이것은 90년대에 유행했었는데 내용은 졸업한 뒤 ’우리가 함께 지낸 모든 시간‘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그날 밤의 마지막 노래로 적격이었지만 DJ가 어떤 다른 노래를 틀어줬어도 그 순간의 중요성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창이 나왔는데, 나는 그 순간이 영원히 가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화려한 복장이나 우왕찬란한 그랜드 볼룸에는 관심이 없었고, 방안을 뒤덮은 행복감 속에 젖어있는 옆의 친구들을 붙잡은 상태에서 그저 계속 있고 싶었다.
그날 밤 순서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는 도중 잠이 들었다, 나는 프롬으로 갈 때의 조바심과는 반대로 버스가 영원히 달려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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