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야기

"너, 기도해봐."

박중련 2009. 2. 2. 10:16

 

  "아빠 학교갈 때 물 몇 박스 좀 사가지고 가요." 현열이가 이 번에 물을 챙기는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에게 물은 어려서 축구할 때 부터 필수품이었다. 보딩스쿨 다닐 때에는 차가 없어서 수퍼마켓에서 무거운 물을 사기가 힘들었기때문에 우리 부부는 늘 다음 방문할 때까지 마실 물을 충분히 챙겨주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숙사에서 물은 비싸지 않아도 사막의 오아시스만큼 값어치가 있다.

 

집에서 휴가를 마친 현열이를 데리고 차로 유펜으로 향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가 푸념을 털어놨다.  본인이 운동하러갈 때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폴란드 스프링 물 한 병을 덥석 집자 '너는 물을 사지 않냐?'는 말을 던져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퍼마켓에서 50전도 채 안되는 물 한 병이 그가  평생지기로 여겼던 친구에 대해서 의구심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한 두 병도 아니고 박스 채로 널려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했다. 현열이는 아마도 이 친구가 정말 입이 타는 사막에서 마지막 물 한 병을 함께 나눠마실 수 있을까 의심했었을 것이다.  또는 그 물값의 몇 천배 이상을 줄수 있는 자신을 너무도 몰라준다는 생각에 답답했었을 것이다. 그 친구 입장에서도 자기 물병을 맘대로 집어가는 현열이를 보고 물의 값어치를 떠나서 더 깊은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열이는 그 친구에게 그 점 이외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둘의 앞날에 어떤 암운을 던지고 있는지 몰라 찜찜해 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그가 물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봐야 한다. 우리 부부는 삼남매에게 특별히 돈 쓰는 법에 대해 트레이닝을 한 적이 없다. 그저 필요한 옷은 주로 고급 백화점을 몇 번 돌고 온 고급 브랜드를 디스카운트 백화점인 마샬같은 데서 사주었고, 그가 찜질 한 옷이 있으면 조금 비싸도 명절이나 생일등을 핑계로 사주기도 했다. 남을 위해서 쓰는 데는 조금 풍성히, 우리를 위해서는 약간 짜게 썼다. 그래서 현열이는 돈은 우리를 편하게 하고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낭비하면 좋은 일을 위해서 쓰는데 제약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그에게 제일 큰 관심사는 부모님이 학비를 낼 수 있을까 뿐이다.  현열에게 용돈을 주려고 하면 늘 '정말 필요없어요."하고 서로 싸우는 경우가 태반이고 결국에는 그의 방에다 던지고 온다.  그는 만약 자신이 돈 버는 데 신경 쓴다면 천문학적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비록 지금 그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없지만, 마음은 항상 부자이며 돈에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도 가깝게 여겼던 친구로부터 현열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20대의 그런한 생각은 50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그친구는 자기 물건을 신주 모시듯이 한다. 모든 물건을 아끼면서 깨끗이 쓰는 것은 좋은 습관이나, 자신이 아낀다고  접근을 금하게 하면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비참해 진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니것 내것 가리면서 친구하자는 얘기이다. 그러한 그의 뿌리깊은 발상은 항상 나를 숨막히게 했다. 만날 때 마다 비슷한 느낌을 받고나서 한 숨을 푹 쉴때면, 아내는  "화를 내지 말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세요." 라고 말한다. 공자 왈 "골육의 친족관계를 끊을 수 없듯이, 옛 친구와의 우정이란 아무리 싫다 해도 끊을 수 없는 법"이란다.

 

그래서 나도 현열이게 "너, 기도해봐"란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넘치게 싸 가지고가서 그와 친구들이 나눔의 정을 서로 느낄 수 있게 신경을 쓰고있다.

 

박중련

02-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