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야기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존경하는 아버지 출신 대학 선택"

박중련 2009. 2. 2. 12:46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7> 유펜 조기전형 합격 박현열 군[LA중앙일보]
“존경하는 아버지 출신 대학 선택”
기사입력: 09.07.07 15:51

필립스 아카데미서 불가능은 없다는 교훈 배워
보딩스쿨서 캠퍼스 생활 미리 경험
SAT 2270점.남들 안하는 특별활동
북한 지원 LiNK 뉴햄프셔지부 설립

"12학년 직전에 다녀온 캠퍼스 투어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나온 대학이기 때문에 유펜을 선택했습니다."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유펜에 조기 입학이 결정된 박현열(영어명 알버트)군. 그는 지난 11월 조기 전형을 접수할 당시 유펜을 골랐다.

"회계사인 아버지(박중련씨)는 늘 바쁘지만 주말엔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세요. 유펜에 가겠다고 하자 '그 학교가 정말 원하는 곳이니'라고만 물으셨지 큰 반대도 찬성도 없으셨어요." 유펜은 2학년말까지 전공을 결정하면 되기 때문에 아직 그는 관심 분야를 좁히지 않고 있다. 축구를 사랑하고 도전을 즐기며 남 돕는 일에 적극 나서는 박군이다.

그가 다니는 필립스 아카데미는 명문 보딩스쿨로 뉴햄프셔에 있다. 1781년 설립된 남녀공학으로 1000여명의 학생이 다니는데 한인 학생과 유학생은 100명이 조금 못 미친다. 전세계와 미 전역에서 모인 학생이 다양하게 모여 있어 대학 캠퍼스 생활을 미리 하는 것 같다고.

지난 4년간 다닌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생활은 그를 어떻게 바꿨을까?

"생애에서 가장 멋진 결정이었죠. 200페이지를 바로 다음주까지 읽어오라는 힘겨운 과제들도 있지만 자기 한계를 시험해보는 경험을 하면서 내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어요.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필립스 아카데미의 교훈은 'Non Sibi'. 라틴어로 '나 자신만 위하지 말자(not for oneself)'란 뜻이다. 그는 "남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해 여름 그는 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를 방문했다. 교회에서 떠나는 선교여행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방문해 벽에 페인트도 칠하고 점심 식사도 준비하는 등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짧은 봉사가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해요. 하지만 제가 많이 자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남을 위한 사람이 되라는 말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고요."

박군의 SAT 점수는 2270점. 학교 성적도 낮지는 않지만 최고 수준은 아니란다. 하지만 3페이지에 달하는 특별 활동은 그의 다양한 관심과 지역봉사 정신을 잘 보여준다. 유펜에 제출한 이력서 중 특이한 점은 각각의 봉사활동란에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할 활동'이라고 기입한 것이다. 그는 "원서를 어떻게 써야 내 자신을 잘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책에서 '대학에 가서도 계속할 활동을 반드시 기입하라'는 글을 읽었다"고 답했다.

특히 박군의 특별활동은 대부분 한인 학생들이 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박군은 고교 4년 내내 '크리스천 펠로우십'을 이끌었다. 매년 40주 동안 매주 4시간씩 할애해 지역사회 봉사와 찬양팀 인도 등을 했다. 뉴햄프셔주에 많은 한인 입양아들과 매달 모임도 가졌다. 12학년때는 지역사회 커뮤니티 봉사협의체 학생 이사 7명에 포함됐다.

8살때 동네 리그에서 시작한 축구는 미드필더로 학교 대표 선수로 선발될 정도로 뛰어나다. 뉴저지주 대표(7학년) 뉴햄프셔주 대표(10학년)로 출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직접 보면서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영표 선수의 팬이 됐다고.

수많은 한인 학생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의 음악 경력을 가진데 비해 그는 9학년때부터 '퍼커션 앙상블(Percussion Ensemble)'을 했다. "스네어 팀파니 탐탐 등과 같은 두드리는 악기만으로 이뤄진 밴드에요. 4~10명의 학생이 저마다 타악기를 하나씩 안고 매 학기마다 학생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활동은 11학년때 만든 '링크(LiNK)'다. 북한 실상 알기 북한 어린이 돕기 활동을 펼치는 2세 단체인 링크를 접한 박군은 뉴햄프셔 지부를 만들었다. 최근 시간 부족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후배들이 뒤를 이어 강연회를 열고 있다.

그 외에도 2005년 뉴욕중앙일보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가 주최한 중고등.대학부 에세이 콘테스트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

조기 전형에 합격해 남보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게 됐다는 그는 "남는 시간에 기타 레슨을 받고 다른 대학으로 흩어질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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