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기 위하여
현열이가 12학년 때 쓴 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원제는 “To Be Me.'
나에게 재미동포 2세로 산다는 것은 내가 매일 직면하는 장애물들을 이해하는 한정된 그룹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전통유산이 나란히 존재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수 무리에 속한다. 여기에는 가장 가까운 몇몇 친구들과 나의 부모님조차도 제외된다. 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그 그룹은 바로 내 위치에서 나와 같이 평형 상태를 지키기 위해 항구적인 탐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 삶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은 두 갈래 길이 있으며, 둘 다 내가 결코 뛰어 넘을 수없는 경계를 갖고 있다. 한쪽으로는 ‘미국인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한국인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이다. 적절한 얼굴, 적절한 성(姓), 적절한 가족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전자에도 잘 어울리지 못하며,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고 그에 적합한 어린 시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후자의 범주에서도 자주 밖으로 벗어난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스펙트럼의 한끝을 충분히 껴안지 못한 채 영구적으로 양쪽을 오가면서 지내고 있다.
그 결과 ‘재미동포 2세’란 단어는 한 범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주지시켜준다. 그것은 실제로 물체들과 생각들을 시사하는 한 상징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내 부모를 항상 존경해야 한다는 공자의 사상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종종 견딜 수없는 내 어깨에 놓인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내 부모의 무수한 희생을 인지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미국에 살면서 갖게 될 미래의 직장과 가정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 친척들과 많은 비한국인 친구들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항상 지속되어야 하는 조심스러운 균형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을 시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그것은 나를 시사하고 있다.
나는 매일 이 믿기 힘들만큼 복잡한 용어를 요약해 보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을 통하지 않고는 한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없다. 부모님이 연세가 들고 나 또한 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서 현재 큰 소리로 울려 펴지는 그 언어(한국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지하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친척들과 여러 세대를 걸치는 끝없이 보이는 가족 간의 연결고리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내 삶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잊으라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관리하는 먼 친척들의 주소로 가득한 명함철을 더 이상 개정하지 말라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나는 내 동료가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그만 사용하라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나는 ‘Korean-American'을 덜 복잡하고 더 편리한 단어로 줄이라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내가 스펙트럼 한 쪽에 너무 오래 머물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내 정체성들을 인식하고 균형을 유지한다면, 내 삶의 서로 다른 양쪽 끝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경험하는 헤아릴 수 없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이 사랑이 내 존재를 규정해주었고 나를 지탱해준 큰 힘이 되어왔다.
To be Me
(12th Grade)
In my life, there are two paths that extend in different directions, both of which have boundaries that I can never exceed. To one side lies what it means to be American, while on the other, what it means to be Korean. Without the proper face, surname, and family, I don't quite fit into the former; and, without fluency in Korean and the appropriate childhood, I am often cast out of the latter. Therefore, I am perpetually swayed from side to side, never fully embracing one end of the spectrum.
As a result, I am reminded that the term "Korean-American" (of the second-generation) is so much more than just a category. It is in fact a symbol that points to objects and ideas far beyond itself. It points to the Confucian understanding that my parents should always be respected. It points to an often unbearable expectation for success that rests upon my shoulders. It points to the knowing of my parents' countless sacrifices. It also points to a future job and family in America. It points to many Korean relatives and many non-Korean friends. It points to a careful balance that must be maintained at all times. It points to all this, but most importantly, it points to me.
I struggle each day trying to epitomize this incredibly complicated term. Born and raised in the U.S. I have no direct link with Korea except through my parents. As they grow older and I begin to create my own life, I will no longer have to speak the language that currently resonates so loudly in my household. In time, the seemingly endless ties that my father and mother maintain with family members from all over the world, spanning for multiple generations, will be jeopardized.
In my life, I will be tempted to forget it all. I will be tempted to stop updating the Rolodex full of distant relatives that my father keeps. I will be tempted to stop uttering a language that none of my peers speak. In essence, I will be tempted to curtail the term "Korean-American" into a less complex, more convenient word. Therefore, I must never get lazy.
When I dwell too much on one side of the spectrum, I distance myself from the people on the opposite end. However, when I embrace and balance the intricacies of my identity as a Korean-American, I receive the immeasurable privilege of experiencing love with people on two very different sides of my life. This love has been the defining factor of my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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