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딩스쿨

오바마 행정부의 보딩스쿨 출신들

박중련 2009. 3. 7. 12:25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본관인 스미스 홀

 

오바마  행정부의 장관과 백악관의 수석비서관들 약 40여명 중에서 현재 파악된 보딩스쿨 출신들은 모두 3명이다. 두 명이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출신이고, 한 명이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출신이다.

 

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Northfield Mount Hermon School, 또는 NMH)출신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인수인계 팀의 공동대표를 지낸 바레리 자렛(Valerie Jarrett)이다.  그녀는 2009년 현재 53세의 흑인여성으로 백악관 선임보좌관(Senior Advisior and 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Intergovernmental Affairs and Public Liasion)이란 직책을 갖고 있다. 장관과 같이 명예로운 보직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장관직도 맡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오바마의 신임도 두텁다. 그녀는  스탠포드대학 학부와 미시간대학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재원인데, 가족사를 보면. 그녀의 증조부는 흑인으로서 MIT를 처음 졸업한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세인 루크 병원의 최초의 흑인 레지던트이었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National Urban League 회장이었던 버논 조단(Vernon Jordan)이 그의 백부이기도 하다. 자렛은 그녀의 가족사가 미국 흑인 역사일 정도로 오바마보다 훨씬 뛰어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녀가 오바마 부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미셀 오바마가 큰 로펌에서 일하다가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시카고 시청으로 직장을 옮길 때, 미셀을 인터뷰했었고 그녀의 직장 상사로 있으면서 였다.  당시 자렛은 미셀이 대통령부인이 될 것을 직감했었다고 한다.


만40세의 최연소 각료로 기획예산처장(Director of the Office of Managment and Budget)에 오른 피터 오스자그(Peter R. Orszag)는1987년에 엑시터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마쳤다. 그등록리고는 일년에 40명만 선발하는 권위있는 마샬 장학생(Marshall Scholar)자격으로  런던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ondon School of Econcomics)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보딩스쿨에서는 유태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에 수업을 하기때문에 유태인의 수가 극히 적은데 오스자그는 그 소수 중에 한 명이다. 그는 이미 10년전에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보좌관 모임에 선임고문(Senior Adviser on th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 (1995-1996))를 역임했고 2007년 1월 부터 2008년 11월까지는 국회의 기획예산처장을 지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맡은 직책인데 그가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간다면 은퇴하기까지 앞으로 25년간 훨씬 더 역량있는 역활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한 예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기획예산처장을 맡았던 레온 파네타Leon Panetta는 대통령비서실장 그리고 이번 행정부에서는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또 다른 엑시터(1967년 졸업) 출신으로 백악관 법률자문(General Counsel)으로 발탁된 그레고리 크레이그(Gregory Craig)가 있다. 백악관의 법률자문직은 웨스트 윙의 몇개 안되는 코너 오피스를 갖고 있는 중요한 직책이다. 그의 아버지는 스탠포드 대학의 학생처장과 여러대학에서 총장을 지낸 교육가인데, 그가 아들을 엑시터에 보냈다면 그 곳에 거는 교육적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크레이그는 엑시터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서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액티비스트(Activist)로 맹 활약했다. 대학에서는 월남전 반대운동을 하면서 당시 조지타운 대학 학생이었던 빌 클린턴과 교우를 가졌다. 당시 클린턴과 크레이그의 20년 연상의 선배이자 친구이었던 연방하원의원인 알 로웬스타인(Al Lowenstein)은 이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을 만큼 크레이그도 클린턴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크레이그는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한 후 1971년 예일대학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때 클린턴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힐러리와도 교우를 갖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포함한 여러 요직을 지냈고 1998년 빌 클린턴이 탄핵재판을 당했을때 담당 변호사로서 그를 성공적으로 변호했다. 그는 이미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했던 힝크리 뿐만 아니라 워싱톤 정가의 논란이 될 만한 인물들의 변호를 맡아 명성을 떨쳤다. 그가 백악관 법률보좌관으로 지명되기 전 국무부장관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미국변호사협회에 파다했다. 그는 현 행정부에서 국무부 장관내지는 법무부 장관에 등용될 확율이 매우 높다.

    크레이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디베이트의 상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 쟌 맥케인 연습 파트너 대역을 했었고, 잔 케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일 때에는 조지 W 부시 대역을 담당 했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맥케인의 오바마 대역과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의 상대인 잔 케리 대역을 엑시터 출신인 뉴 햄프셔 주 연방상원의원인 저드 그레그(Judd Gregg)가 했다는 점이다. 엑시터는 졸업생 둘이 대통령 선거 디베이트에서 동시에 양당 후보의 상대 역활을 했다는 진기한 기록을 갖게되었다. 

 

위의 세 사람은 오바마 행정부의 각료급 보딩스쿨 출신들이다. 엑시터 출신인 오스자그와 크레이그는 그곳에서 공부 잘하고 지도력이 뛰어난 여러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백인이지만 엑시터에는 내일의 오바마를 꿈꾸는 흑인학생들도 상당 수 있다.  노스필드 마운트 허먼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버거 킹의 창업자들과 나타리 콜(Natalie Cole)이나 우마 서만(Umma Thuman) 같은 연예인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이다.  미국의 명문 보딩스쿨들은 이러한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있다.

 

 세계 1%를 꿈구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