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패배의 감격

박중련 2009. 2. 22. 21:53

 



 

내 나이 지금 52세 이지만 나보다 10 살 아래인 사람과 팔씨름를 해도 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나는 지난 7여년 간을 역기로  몸을 단련해 왔다. 내가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은 7년전 새로운 오피스자리 물색하기 위해 어느 미국 부동산 소개업자를 만나서 부터였다. 그는 60여세 쯤 되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20대 여성에게 시선을 힐끗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한 번 둘러보게 되었다.  그는 바위와 같이 딱딱한 근육을 가진 로보캅과 같은 체구를 갖고 있었다. 그는 40대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20여년간 운동을 걸른 날은 고작 10여일 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대문을 박차고 나올때면 "세상은 내 것이다" 하는 자신감을 갖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성에게 어필하는 것 보다도 그가 갖고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당장 맨해튼 32가에 있는 Bally에 등록하고 일주일에 2-3번씩 나가서 운동을 해왔다. 대학교 때에 역도를 한 적이 있어서 쉽게 적응이 되었다. 근육이 서서히 예전에 프로그램 되어있던 대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매번 무게를 조금씩 올리니까 다리 운동, 벤치 프레스 등 모든 것을 약 200파운드 정도에 맞춰놓고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것이 약 2002년이었으니까 현열이가 14살때 이었다. 현열이는 아빠가 역기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났다. 그도 엑시터에서  미식축구선수들과 함께 Weight Lifting을 하는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매 학기가 끝나고 집에 올때면 그의 몸이 온통 근육으로 둘러싸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12학년 때만 해도 180 파운드 정도를 드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힘은 거의 7-8년 경력의 아빠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내일이 시험이어도, 그는 큰 물병에 프로틴과 우유를 타가지고 체육관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고 운동을 한 후 그것을 쑤욱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최근 20살이 된 현열이가 유펜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그에게 팔씨름을 제의했다. 그는 대뜸 "아빠, 저는 육체적으로 제 인생의 프라임이에요." 하면서 내 손을 꽉 잡았다. 그 때 나는 패배의 전운이 온몸에 확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봤지만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넘어졌다. 처음으로' 아들이 나보다 낫다'라는 것을 느끼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운동의 결과는 연습량에 비례한다. 그는 분명히 약 250파운드대 이상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와튼학부 2학년인 그가 언젠가는 지식면에서도, 와튼학부와 와튼 MBA를 나온 나를 넘어설 때가 올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비교적 빨리 올거라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현재 굴리는 지식의 눈덩이가 내가 그 나이에 굴리던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는 엑시터에서 예습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고, 토론교육을 통해 교수님들과의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독특한 그곳 영어교육을 통해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었다.

 

그는 엑시터 졸업생으로 교훈인 Non Sibi (나를 위하지 않는)정신을 자기 삶에서 실천하겠다는 각오로 살고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힘이 세어지고, 많은 지식을 축적하여도, 이것들을 올바르게 사용할거라는 확신이 있다.  내가 패배의 감격을 맛보던 날, 아빠를 늘 우러러 보았던 현열이는 반대로 승리의 충격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현열이가 모든 면에서 나에게 KO패를 안기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