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아멘 (Amen)

박중련 2009. 2. 5. 12:50

                                                               필립스 엑시터가 위치한 뉴햄프셔 주 엑시터 시

 

2004 3월경 어느 날 현열이가 갑자기 전화로 식구들이 보고 싶다며 한번 학교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뉴저지 우리 집에서 엑시터까지는 자동차로 5시간이 걸린다. 왕복 10시간이 걸려서 가도 실제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그가 학교시간이 끝나는 6시부터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 8시까지 2시간이 고작이다. 그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부모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오라고 하면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사를 제쳐놓고 갔다.

 

보딩스쿨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는 자녀를 옆에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나마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자녀가 전화를 자주하면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염려하게 되고 전화가 뜸하면 공부하느라고 바쁜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전화 목소리에서도 심리상태를 감지하려고 한다. 왠지 오늘 목소리는 어두운데. 어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네. 아마 자식을 멀리 보딩스쿨에 보낸 모든 부모들이 겪는 고통일 것이다.

 

우리는 현열이의 전화를 받고 뉴저지 집을 떠나 그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엑시터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약 20분 떨어진 메인 주 해변가에 있는 해산물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현열이, 막내 승연, 그리고 우리 부부 넷은 모처럼 좋아하는 바다가재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 식당은 레드 랍스터(Red Lobster)급의 대중식당이었다. 메뉴를 보며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는 순서를 결정하는 때였다. 나는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다 섞이니까 모두 한꺼번에 갔다달라고 했다. 말이 부산하게 오고 가고 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현열이가 “That's rude."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까 현열이가 머리를 설래 설래 흔드는 것이었다. 아빠가 웨이트레스에게 무례하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 기분이 상했지만 화를 내면 그도 식사를 못할 것 같아 꾹 참았다. 시선을 식탁한 곳에 고정해 놓고 묵묵히 식사를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키웠길래 현열이가 아빠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떠나는 시간까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그리고 내가 정말 웨이트레스에게 뭘 무례하게 한 것인가? 그러는 와중에 나는 그의 매너가 꽤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웨이트레스에게 말할 때마다 “Thank you”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지도 선생님도 현열이가 특히 예의바르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4년 전 11살 된 현열이는 바다가재를 먹는 똑같은 상황에서 겁(?)도 없이 아빠에게 웨이트레스에게 무례했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그에게 아빠에 대한 예의를 가르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이러한 상황이 또 발생된 것이었다. 나는 부자관계에 있어서 한 번도 아빠의 권위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 나는 현열이가 아빠가 완전한 사람이어서 라기 보다는 아빠이기 때문에 따르기를 바랬다. 현열이는 예쁜 여자들이 지나가면 손으로 내 눈을 가리기도 하는 등 우리는 서로 격의 없게 지내왔다. 그래서 그도 부담 없이 말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더 이상 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기숙사로 향했고 나는 차에서 그에게 몇 마디 충고를 했다. "아빠가 어떻게 예의 없이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빠가 정말 예의가 없었더라도, 아니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부시맨 이었어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현열이는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다시는 아빠에게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답변으로 화가 풀릴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주고는 집을 향해 달렸다. 오빠의 모습을 차의 뒤 창문으로 본 승연이가 "오빠가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까 현열이를 그 상태로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를 위로해주러 갔다가 도리어 상처만 심어주고 온 격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간 현열이는 아빠가 전화 받을까봐 엄마 핸드폰으로만 전화를 했다. 나도 현열에게서 온 전화일까 봐 받기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사실 나는 현열이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주의를 주고 그 일을 깨끗이 매듭지었어야 했었다. 그러나 내 성격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없이 몇 일간을 아들이 없는 아빠, 그리고 아빠 없는 아들로 생활했어야 했다.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위해 나는 현열이에게 e-mail을 보내게 됐다.

 

"현열아 아빠는 그동안 서로 말을 나누며 의지할 수 있는 아들이 없어서 힘들었어. 현열이는 어땠어? 현열이 생각에 아빠가 예의 없다고 느끼면 아빠에게 따로 조용히 이야기 해 줘. 그래야 아빠도 고치지. 현열아 우리 다음부터는 서로가 조심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

 

얼마 안 있어 현열에게서 "아멘(Amen)"이라는 답장이 왔다.

 

그 후부터는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현열이와 축구연습이 어떠했으며 코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등 늘 하던 대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웃음꽃을 피우면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 부자는 이 일로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러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나는 현열이만 잘못했다는 생각에 아빠가 무례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년 후 어느 날 나는 호기심에서 아빠의 어떤 점이 무례해보였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빠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는, 아빠가 웨이트레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주는 면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우리 한국인 1세들은 주문은 빨리 할수록 좋다는 생각에 웨이트레스와 대화 도중 마음에 드는 음식이 나오면 말을 끊고 곧바로 주문을 한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의 애피타이저, 음식, 디저트, 와인 등을 주문하는 절차는 거의 문화라고 여겨질 정도로 길고 진지하다. 웨이트레스가 그날의 스페셜을 길게 낭독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나서야 주문을 한다. 가끔 미국TV 몰래카메라의 돌발적 상황에서 어김없이 당하는 미국인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식당 매너가 아쉬웠던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도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