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앗! 세상에 이런 일이...”

박중련 2009. 2. 4. 23:20

뉴저지 리틀페리에 있는 한 동양식품점 파킹장에 여러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였다. 스시맨 과 지배인을 포함한 몇 명이 밴(Van)의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아내가 타고 온 밴이 시동이 안 걸리는 것이었다. 당황한 그는 나에게 전화하러 식품점안으로 들어갔고, 그 상황을 알게 된 직원들이 도우러 나왔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키를 차안에 둔 채로 문을 닫아버리며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몇 시간 후에 그 문은 전문가가 와서야 열 수 있었으며 차는 직원이 몇 번 시도를 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시동이 걸렸다. 그런 와중에 어느 분의 “기어를 중립에 두고 시동을 하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 아내의 귀에 솔깃하게 들렸다. 다음날 아내는 그 차를 몰고 딸과 만나기로 한 뉴저지 초대교회로 갔다. 딸은 가끔 그곳 가까운 도서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곤 했다. 그 교회는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파킹장이 비교적 가파랏다. 교회 바로 옆 파킹장 20미터 정도는 10도 경사 그리고 잔디가 약 15미터 정도 60도 급경사로 깔려있으며 그 밑으로 평평한 파킹장이 30미터 정도 있었다. 파킹장은 크고 작은 나무들로 덮여진 고랑으로 파라무스 고등학교와 경계를 하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한 아내는 차를 파킹장에 임시로 세우고 딸이 왔나 확인하러 나갔다. 딸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차를 제대로 파킹하러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또 안 되는 것이었다. 이때 “기어를 중립에 두고 시동을 하면 걸릴 수 도 있다”는 말이 생각난 그는 무심코 기어를 중립에 갔다 놓았다. 그러자마자 차는 서서히 뒤로 움직이더니 급경사를 타고 미끄러지며 고랑으로 쳐 박혔다. 마침 차가 안착한 곳은 작은 나무들이 있는 곳이어서 아내는 다치지는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차가 고랑에 얼굴만 내놓고 있는 것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교회에서 기다리다 나온 아내는 후에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의 모습이 아쉬웠다고 한다. 이때 실추된 나의 크레딧은 이 사건에서 내가 가장 비싸게 치른 대가이었다.

 

일단 AAA에 전화 걸어 견인차를 불렀다. 그 차의 운전사는 탈리반과 같이 생긴 매우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차를 끌어올리다가 다치면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에 경찰입회 하에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이 말에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내가 책임지는 조건으로 차를 끌어올려서 보니까 뒷 창문이 깨져 있었다. 마침 그가 새 창문은 700불 정도 하는 데 중고인 것으로 450불과 인건비를 주면 고치겠다고 해서 일단 차를 그의 회사인 Bennet Kay로 옮겼다. 그 다음날 미심쩍어 딜러에 알아보니 새 창문이 320불 한다는 데 깜짝 놀랐다. 이 회사가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일을 맡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를 인수하려니까, 하루 파킹값 $50불, 자동차 파트 알아본 값 $70불,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행선지까지 가는 값 $50불 도합 $170을 내라는 것이었다. 크레딧 카드를 건네주니까 현금만 받겠다고 하면서 은행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곳까지 걸어가서 현금을 인출해 계산한 후에야 차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회사는 파라무스에 있는 알콜라 교회 옆에 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이 지역 정비 회사들이 혀를 내두르는 악덕업자였다. 그 사무실 안에 걸려있는 파라무스시에서 받은 많은 감사패들을 보고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뉴저지 Hawthorne에 있는 딜러에 도착할 때쯤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깨진 창문 때문에 나는 덮을 것을 가지고 딜러로 다시 갔다. 차에다 덮어씌우고 입구에서 후진해서 나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뒤에 한 차가 25마일 존인 이곳을 약 45마일 속도로 달려오더니 나를 피하기 위해 내가 나온 드라이브길로 우회전해 들어가 파킹해놓은 나의 다른차 밴 앞면을 긁고는 정지했다. 나는 일단 딜러 사무실로 들어가 상대방 여자와 함께 경찰을 불렀다. 그녀는 미스 유니버스정도의 미모였는데 이 딜러의 직원과 경찰하고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필요한 서류를 보여주고 상황설명을 했지만 그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아무 것도 받아쓰지 않았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차안에 있던 일회용 카메라로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 놓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나는 경찰서로부터 티켓을 받았다. 내용인즉 내가 드라이브길로 위험하게 나왔기 때문에 다른 차가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 차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침 딸의 친구 어머니가 보험회사에 다니셔서 그 분에게 자문을 구하니까 나도 그에게 Civilian Complaint란 명목으로 티켓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자세한 경위를 알기 위해 경찰서에 가니까 이 사건은 모든 직원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 되어 있었다. Traffic Report는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File이 안되어 있었으며 그 일을 담당한 경찰관을 만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리포트에는 상대방의 주장만 쓰여있었고, 도면은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내가 드라이브 길로 나오는 동시에 그 차가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본인이 현장에 없었으면 두 사람의 말을 함께 적어야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으나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결국 나도 그 여자에게 Speed와 Reckless Driving 명목으로 티켓을 발행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일이 복잡하게 전개되어 감에 따라 나는 그 지역의 변호사를 구하려고 Yellow Page를 뒤졌다. 그 중 Traffic Ticket전문이라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전화를 하니까 담당 검사가 자기와 아주 친하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오백불에 그 사람과 계약하고는 이 사건에 대해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가 법률연구를 할 필요도 없게 직접 인터넷에서 구한 자료와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서를 그에게 보냈다. 과연 오백불에 이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하는 수수께끼는 법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그는 법정에서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왔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보낸 서류를 하나도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친구라던 검사로부터 천대받는 모습을 본 나는 조금 불안했다. 다행히도 검사는 경찰이 사건 발생시 현장에 없었고 증인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티켓을 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변호사들은 두 티켓을 철회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10분만에 끝났다.

 

이 해프닝은 몇 일 사이에 연이어 발생한 것으로 일단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이 에피소드에서 아주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차를 견인할 때는 절대로 모르는 곳으로 가지 마라. 둘째, 항상 차에다 일회용 카메라를 구비해 사고시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라. 셋째, 경찰이 목격하지 않은 사고 현장은 객관적인 증인이 없는 한 티켓을 발행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넷째. 억울하게 한쪽만 티켓을 받으면 다른 쪽에도 발행케 해 나중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라. 다섯째, 변호사를 선임할 때는 검사를 잘 안다고 떠버리는 사람은 피하라. 가장 중요한 여섯째, 교통사고시 가족의 건강을 좀더 확실하게 챙겨라.

 

박중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