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대한 나의 생각들

소득세신고서에 비친 자화상

박중련 2009. 2. 4. 03:09

전문가칼럼> 소득세신고서에 비친 모습[뉴욕 중앙일보]
기사입력: 08.18.06 18:50

박중련 공인회계사

사람들은 바쁜 생활 중 가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카지노에 가기도 한다. 가서 운이 좋으면 좀 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잃기도 하나 대개의 경우 푼돈이어서 아무 미련 없이 다시 정상생활로 돌아온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카지노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나 그곳 출입이 잦아지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수렁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나는 그 늪의 바닥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옛 고객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은 자신의 회사가 초대형화되면서 대형 회계법인의 서비스를 받게 되어 나와 한 10년 간 연락 없이 지냈다. 그는 초췌한 모습이었으며 평상시 입는 옷일텐 데도 헐렁해 보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나는 소문으로 그 사람의 소식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충격은 덜했다. 그는 따뜻한 국물을 맛있게 먹으며 그동안 지내온 일들을 들려주었다.

15년 전 그는 뉴욕동포사회에서 알아주는 부자이었다. 그런데 친구와 카지노 출입을 하면서 그 많던 재산을 다 처분해 버렸다고 한다. 그의 재산을 구입한 사람이 바로 함께 다녔던 친구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유대인들의 검소한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며 재산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 부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게 했었다. 노년이 된 지금 그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홈리스가 된 몸으로 교회의 기도방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면서 플러싱 주위를 전전하고 있었다. 도박이 주는 엄청난 피해를 직접 목격하게 된 나는 도박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회계상으로 도박 수입을 정리하려면 두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는 카지노에서 번 도박 수입은 정확히 정산되어 정부에 보고되지만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는 손실은 정산되지 않는 경우이다. 따라서 기록에 없는 손실은 후에 증명할 길이 막연하다. 그래서 어떤 카지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해 주고 고객 관리를 위해 고객에게 고정 어카운트를 주고 이익과 손실을 정산해주기도 한다. 이것들은 단순히 세무보고시 발생하는 어려움이다. 더 큰 다른 문제는 세무보고서를 검토하는 사람들 눈에 비춰진 납세자의 모습이다. 도박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은행이 융자를 쉽게 해줄 리 없고 대학도 학비보조 결정시 그러한 가족에게 좋은 시선을 보낼 리 없다. 우리가 매년 작성하는 개인종합세금보고서에는 납세자의 숨길 수 없는 생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는 거기서 정직성 성실성 또는 남을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도박하는 납세자의 자화상을 볼 수도 있다. 그곳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가는 납세자 자신의 의지와 용단에 달렸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