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미국에 와서 학업을 쉬고 2년간 점원 생활을 해 온 필자에게 대학에서 공부할 분량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학업포기는 미국생활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학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다. 우선 하루에 8시간만 자고 그 외 시간은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건전한 정신은 육체에서’라는 구호를 생각하며 운동도 열심히 했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서서히 깎듯이 시간이 가면서 내 작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과사전과 같이 두꺼운 교과서를 소화하는 것과, TV 화면같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교수들의 강의를 어떻게 필기할 것인가가 큰 문제였다. 일단 인문학 교과서는 요점을 정리하고, 수학과 과학 교과서 속에 있는 문제는 모두 세 번씩 풀어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강하는 날부터 학기말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교과서를 요점정리하고, 그것을 또 정리하면 책의 핵심내용이 인덱스 카드 10장 정도로 정리가 됐다. 그쯤 되니 인덱스 카드에 있는 단어 하나만 생각하면 그 단어와 연결돼 있는 문장을 줄줄이 불러낼 수 있었다. 교수님 강의는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해서 유행가같이 듣고 또 들었다. 교과서에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해답이 없기 때문에 나의 답이 맞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의문 나는 것은 교수님과의 면담시간을 최대한 이용했다.
다른 학생들은 면담의 필요성을 별로 못느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에게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덕분에 유명한 교수들을 가정교사와 같이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질문다운 질문을 물어보는 내가 밉지는 않았는지 괴롭힘을 당한 교수들도 후에 좋은 추천서를 써주셨다. 한번 푸는데 30분 이상 걸리는 문제를 세번씩 푼다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으나 나는 정한 룰을 지켜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에 회계학의 원리를 깊이 생각했다면 회계사가 아니라 회계학의 석학이 됐을런지도 모르겠다.
시험보기 전에는 도서실 구석에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험장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두뇌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벽에 기대 물구나무를 섰다. 그러면 피가 머리로 쏠려서 인지 기분이 상쾌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말 시험 때 물구나무 서는 나의 모습을 본 아내가 기이한 듯 쳐다봤다.
수영선수가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몸에 난 솜털을 깍는 것 같이 필자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남들이 사회봉사를 하는 시간, 운동 팀에서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시간, 단체를 위해 열심히 뛰는 시간에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내가 그들보다 능력이 뛰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유명 흑인 농구선수들이 농구만이 그들을 가난에서 구제해 줄 것이라고 믿고 운동을 열심히 한 것처럼 나도 학업이 좋은 기회를 줄 것이라 믿고 매진했다.
나는 미국에 늦게 온 것을 탓하지 않았고, 내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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