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은 1975년 내가 18세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 미국에 도착한지 며칠 안 되어서 나는 일을 구하러 집 근처인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 Blvd.)에서 윌톤(Wilton Place)을 따라 멜로즈(Melrose Ave)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다행히 나는 멜로즈 에브뉴에 있는 한 세차장의 할인 쿠폰을 나눠주는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임금은 손님이 쿠폰을 갖고 오면 한 장당 십전을 받기로 했는데 하루에 7-8시간을 뙤약볕 밑에서 일해도 십달러 벌기가 쉽지 않았다. 그 만큼을 벌려면 자동차 백대가 세차를 해야 하는데 실제 그렇다 해도 주인이 부인하면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세차장에 들어설 때면 팁을 받고 화장실도 갈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멕시코인 들이 부러워보였다. 그 일을 3개월 정도 한 후 나는 몇 백 달러를 모아 중고차를 샀다.
난생 처음 일해서 번 수입으로 한국에 있을 때는 엄두도 못 내었던 자가용을 샀다는데 뿌듯했다. 어머니도 얼마 안 되어서 옆집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일본계 미국인이 경영하는 봉제공장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그 차로 흑인 거주 지역에 위치한 봉제공장으로 어머니를 모시러 갔는데 가끔 기분전환을 위해 비버리 힐즈의 명품 거리로 몰기도 했다. 그 길가에 산재한 벤츠나 재규어 등을 가리키며,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차가 맘에 드냐며 돈 벌면 사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힘든 이민생활 중에도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하루의 피로가 쏵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마치 어머니에게 공수표를 띄운 것 같으나 나는 황당한 약속을 한 번 지킨 적이 있었다. 1974년 MBC 장학퀴즈에 나가서 월말장원을 했을 때 주위에서 격려해준 사람들에게 만약 내가 장원을 한다면 받은 상금에서 각각 얼마를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내가 평상시 뭔가 드리고 싶었던 분들이었다. 어른 월급이 5만원이 안되었던 시절에 거금 15만원을 받았던 나는 감사헌금을 제외한 상금을 약속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그분들은 그 당시 기억을 더듬으시면서 말씀하시곤 한다. 나는 월말장원을 한 것보다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 더 흐뭇했었다.
어머니와 약속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벤즈나 재규어를 사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동차 면허가 없으셨고 나도 그러한 차들이 우리 삶에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갖기까지 나에게 두 가지 일들이 있었다. 1981년 겨울 큰 외삼촌과 서울의 어느 최고급 호텔 라운지로 들어가는데 한 여자가 고급 모피 복을 입고 대리석 로비바닥을 쓸면서 지나갔었다. 큰 외삼촌은 나에게 그 여자를 가리키면서 분명히 저 여자는 열등감을 갖고 있거나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감추기 위해서 겉을 저런 모피로 둘렀을 거라고 말하였다. 그러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득권층인 외삼촌이 한 말이었기에 강하게 다 왔으며 그때부터 겉모습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엑시터에 1천5백만 달러를 기부한 텍사스의 석유부자이며 엑시터 졸업생인 스탠리 펠프스는 자동차의 개념을 한 정점에서 다른 정점으로까지 이동시켜주는 개체로 생각하고 현대 액셀급인 포드 포커스(Focus)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가족도 모피를 입어보고 좋은 차를 타본 적이 있었으나 굳이 그런 생각에 메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자동차는 신발같이 튼튼하고 편하면 되지 여유가 없는데 굳이 명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14살짜리 아들 현열이가 아내에게 "엄마, 내가 커서 저기 있는 벤츠자동차 사 드릴깨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에게서 30년 전 나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란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현열이의 제의를 받은 아내는 그러한 차가 필요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며 “엄마는 받은 것 같이 기쁘다”며 그를 사랑스럽게 껴안았다. 아내는 비싼 보석, 고급 모피복, 그리고 최고급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재원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현열이는 엄마에게 벤츠를 사주겠다면 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차를 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동네 축구연습장에 부모들이 타고 오는 벤츠나 BMW를 대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었다. 그에게 그 차들은 부러움보다는 마음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족은 새 차를 살 때 식구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 때 현열이는 친구들이 놀릴 수 있으니까 가장 싼 차는 좀 피해달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아빠가 실제로 그러한 차를 살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여러 생각 끝에 우리 집이 위치한 지형이나 기후에 맞고 평이 좋은 현대 산타페를 골랐다. 현열이는 아빠가 특별히 한국 차를 선택한 이유를 헤아리고는 마치 태극기를 휘날리듯이 자랑스럽게 타고 다녔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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