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15일에는 와튼과 문리대 졸업식, 5월16일에는 유펜 전체졸업식이 있었다. 유펜 전체졸업식에는 기조연설자로 덴젤 워싱턴이 초대되었다. 그와 유펜과의 관계는 대학 3학년인 그의 아들 말콤이 유펜 농구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1년전 유펜 농구팀이 듀크팀에게 대패하는 장면을 ESPN이 관중석에 있는 덴젤을 조명해서그러한 관계를 알게되었다.
그의 메세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와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것이다" 였다. 이말은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브라운이 "지금은 우리가 기다리는 라인이 긴것 같지만 언젠가는 당신의 차례에 돌아올겁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와튼학부 졸업식과 문리대 졸업식에서도 모두 한결같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가 주제였다고 한다. 그말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나도 현열이가 완전히 실패해서 쪽박을 차고 아주 바닥을 기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싶다. 현열이야 말로 실패를 가장 두려워하는 아이인데 나는 누차 그에게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어렸을때 농구할때도 그 좋은 운동신경으로 항상 슛을 쏘면 안들어갈까봐 노마크찬스에도 패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 안쓰러웠다. 그는 민첩한 운동신경때문에 항상 DEFENSIVE PLAYER OF THE YEAR에 올랐지만 현열이가 이점을 극복못하면 큰 문제가 될거라고 생각해왔다. 졸업식에서 두 세번에 걸쳐 연사가 강조한 것도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그 메세지를 그에게 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올해는 내가 와튼학부를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학교는 완전히 변해있엇다. 옛날의 훵한 파킹장에는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들이 빼빽히 들어섰고, 주위 상가는 마치 로데오 거리를 연상케했다. 캠퍼스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예일대학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요즘 유펜에 들어가기가 무척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유펜입학생 중에 아시아계가 25%되면 한국계가 최소한 5%는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펜학부 졸업식 전체 명단을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와튼학부의 졸업생 명단을 볼 때 그 많은 Kim 씨가 두세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금방 뭐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때는 중국사람과 한국사람과의 비율이 많아야 2대1 정도 됐었다. 그러나 지금 와튼학부의 700명 졸업생 중에서 중국계가 150명인 반면, 한국계는 고작 20명에 불과하다. 중국인의 성이 많이 모인 알파벳 C나 Z에 가면 정신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계는 중국본토, 대만, 홍콩,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등에서 온 중국계 성을 가진 학생을 모두 망라한다.
이 역학관계를 보려면 와튼의 입학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와튼은 매년 고등학교 12학년 중에서 약 550명 정도의 학생을 뽑는다. 이 중에 150명 정도는 공대와 연계한 제롬 피셔 프로그램, 문리대와 연계된 헌츠맨 프로그램(50명), 간호학과와 연계된 프로그램(20여명)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는 1학년이 지난 후 원하고 자격있는 학생에 한해서 유펜내에서 와튼으로 전학내지는 복합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다. 이때 약 100여명 그리고 타 학교에서 50여명이 전학해와서 모두 700여명이 졸업하게 된다. 이 모든 학생을 통 털어서 한국계 학생이 20명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은 1학년 끝난 후 전입하는 학생들을 고려할때 고등학교에서 와튼으로 직접 입학하는 한국학생은 전세계에서 10여명도 안된다는 말이된다. 머리가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찬했던 우리 한국인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유펜전체로 볼때도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유펜졸업생 앨범에 Lee, Park, Kim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약 25명 있다. 만약 몇 명이 빠졌다고 가정하고 언론에서 한국인 중에 Lee, Park, Kim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반 이상이라고 할때, 한 학년에 70-80명 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학부 한 학년 총학생수 2400명 중에 동양인이 700명 그중에 한국인이 70명이다.
현열이 학년에 싱가포르에서 유펜으로 온 학생은 모두 21명이었는데 1명만 와튼이었고 나머지는 공대나 문리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 20명이 모두 와튼으로 전학했다고 한다. 다른 과에서 와튼으로 전학하려면 1학년 GPA가 3.8내지는 3.9를 넘어야 한다. 그 싱가포르 학생들은 모두 그 점수를 넘었다는 이야기다. 와튼의 한국인학부학생은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온 학생 수 정도인 것이다.
한국인의 와튼학부내의 위치 외에 또 하나 느낀것은 학생들의 학과선택이다. 이제 미국의 명문대학생들은 회계학을 제1전공으로 하지 않는다. 이번 와튼학부의 졸업식에서 700명 중 6명 만이 회계학 전공이었다. 반면에 약 400명정도가 재정학이었는데, 재정학전공의 상당수가 회계학을 복합전공했지만 회계분야에 가기위해서 보다는 재정학을 더 잘 이해하기위해서 택한 것이다. 내가 졸업할 때인 30년전에는 와튼학부 졸업생의 30%가 회계학 전공이었다. 지난 30년간 아서 앤더슨을 포함한 수많은 회계법인이 불법적인 행동을 해서 파산을 하고 매번 Fraud에 연류되어서 회계법인의 권위는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지금 미국의 회계법인에 가면 주로 숫자에 뛰어난 주립대학 출신 동양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우수한 한국 학생들이 와튼학부에 입학을 희망하는데 정작 한 해에 입학하는 한인이 10명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정도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로하여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 졸업식이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현열이의 유펜 졸업식http://www.youtube.com/watch?v=PPFJmgZrx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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