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기유학때 생긴 일

박중련 2009. 2. 4. 01:22

 

철수가 다니던 인디언 힐즈 고등학교 

 

[전문가 칼럼-미국의 보딩스쿨(14)]조기 유학 제도(상)[LA중앙일보]

박중련 공인회계사
기사입력: 09.20.04 13:55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형의 큰아들인 철수(가명)를 미국에 있는 우리 집에서 맡아 고등학교를 다니게 하였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철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시민이었지만 두 살 때 부모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마침 고등학교를 접하고 있어 철수에게는 보딩스쿨과 같은 좋은 조건이었다. 철수는 공부와 운동을 잘해서 미국의 교육환경이 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이런 장점들 때문에 그를 위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우리집이 속해있는 라마포학군에다 전입절차를 물어보았다. 그 곳에선 나의 보호자 자격 공증서류와 학생이 다니던 중학교의 성적증명서 등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1999년 6월 미국 땅을 다시 밟은 철수는 도착한 다음날 라마포학군 내의 인디언힐즈(Indian Hills) 고등학교 학생처에 구비서류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그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미국고등학교는 방학 동안에 신입생들에게 편지로 지시사항을 알리기 때문에 매우 의아했다. 그러다가 8월 중순에 우리는 철수가 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8천8십5달러의 학비를 내야 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방학이 끝날 때쯤 되어서 학군으로부터 21일 안에 상고하라는 최후통첩이 날라 왔다. 그 편지에는 미란다(Miranda) 권리와 같은 “당사자는 상고해서 판사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다”고 명시를 해야 하는데도 “학비를 내면 다닐 수 있다”고 만 적혀 있었다. 이 것은 미국헌법 14조의 Due Process를 위반한 것으로 후에 우리의 변호사비 보상 청구소송의 근거가 되었다.

뉴저지주의 공립학교를 무료로 다니게 하는 법 18A:38-1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에 해당되는 학생으로는 6살이상 이거나 20살 이하인 18A:38-1(a) (일명 “A법”) 학군에 거주하는 부모나 보호인의 자녀와 18A:38-1(b)(일명 “B법”) 학군에 거주하는 자신의 부모나 보호인이 아닌 사람 집에 거주하는 학생에 한해 조건은 i)부모나 보호인이 자신의 자녀를 가정이나 경제적인 고통(hardship) 때문에 돌볼 수 없다는 것과 그 학생이 단지 학교를 무료로 다니기 위해 와서 살고있지 않다는 서류를 공증해서 제출하고 ii) 그 학생을 학교 다니는 기간 이상을 무료로 돌봐주어야 한다.

라마포학군은 우리의 상황이 B법에 해당되며 구비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비를 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우리는 A법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했었고 학군도 B에 관한 서류를 요청하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학군의 상급기관인 버겐카운티 교육국에 의뢰하니까 법적 보호인(Legal Guardian)자격을 법원에서 인정받으면 된다고 해서 수속을 밟았다. 그런데 법적보호인이 되려면 학군 교육감으로부터 학생이 뉴저지주 18A:38-1 법에 따라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편지를 동봉해야 한다. 이에 대해 라마포학군은 철수가 무료교육을 받기 위해 전입했기 때문에 편지를 써줄 수 없다고 하였다. 뉴저지 법에는 법적보호인이 되는데 그러한 편지를 요구하는 내용이 없지만 버겐카운티 대리(surrogate) 법정은 학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어느 기점부터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해 당사자인 학군이 반대할 수 있는 악습이 제도화 된 것이다.

 

 

[전문가 칼럼-미국의 보딩스쿨(15)]조기유학제도(하)[LA중앙일보]
박중련 공인회계사
기사입력: 09.24.04 17:19

우리는 뉴저지 교육국 행정법원에 철수는 뉴저지 A와 B법 모두에 따라 무료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먼저 A법에 따라 나는 보호인 자격을 갖추었고 철수는 보호인의 자녀이므로 무료로 다닐 수 있으며 법적보호인이 되기 위해서 학군에게 보호인을 인정하는 편지를 제출케 했는데 학군이 거부해 법적변호인이 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B법의 충족요건에 대해선 철수가 미국시민으로 살기 위해선 영어와 미국문화를 배워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에 B법에서 말하는 가정과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철수는 단지 학교를 무료로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영원히 살기 위해서 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를 제기한 우리 측 변호사는 뉴저지주 하켄섹(Hackensack NJ)시에 있는 교육법전문 변호사 마이클린 라글린(Michaelene Loughline)이었다. 그는 50대 후반으로 침팬지 보호 운동가인 제인 구달(Jane Gooddal)과 같은 인상을 풍기는 여성이었는데 그가 우리측 변호사였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2000년 5월25일에 판결이 나왔는데 보호인 자격을 묻는 A법에서 학군이 주장하는 학생이 오직 무료교육을 받기 위해 전입했다는 의도는 쟁점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학군은 보호인 자격 서류의 적법성을 따져야 하는데 본인들이 법적보호인이 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원고가 법적보호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원고는 라마포학군의 거주자이고 철수의 부모로부터 보호인의 권리를 이양 받은 것이 인정되므로 철수는 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B법에 의해 한국에서는 미국시민으로서 영어와 문화교육을 받을 수 없는 것과 본인이 미국인으로서 미국에 살고 싶어하는 의지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가정과 경제적 고통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 법에 의해서도 철수는 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판결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교육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에게는 학군의 뜻을 따르거나 교육국에 상고를 해야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사실 여행 온 한국인들이 자녀를 아는 집에 맡겨놓고 공립학교에 보내는 등 제도를 악용했던 점은 우리동포사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미국시민인 학생이 부모가 미국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공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군의 주장과 행동에서 뭔가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법적변호인 신청과정에서 법원이 요구하는 학군의 동의서류는 상식 밖의 관행이었다. 그리고 철수와 같은 환경에 있었던 학생들이 무수히 많았었음에도 같은 판례가 없다는 것도 이해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라마포학군이 기대했던 것 같이 "설마 학군상대로 소모전을 하겠느냐"는 생각대로 따랐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상대는 연 2천만 달러 예산을 집행하는 부자 학군이었고 학군의 변호사도 우리변호사와 상대 안 되는 대형 로펌(law firm)이었다.

여기서 이긴다고 해도 이 학군에 다닐 수도 있는 우리자녀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기면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동포들을 구제할 수 있지만 지면 그나마 간간이 있었던 그들의 무료진학 기회를 영원히 막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 판례는 미국 시민권 받은 해외 거주 자녀들이 뉴저지 주에 있는 공립학교에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인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기사입력: 10.18.04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