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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기도해 봐."

박중련 2009. 3. 4. 05:40

 

 

 "아빠 학교갈 때 물 몇 박스 좀 사가지고 가요." 현열이가 이 번에 물을 챙기는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에게 물은 어려서 축구할 때 부터 필수품이었다. 보딩스쿨 다닐 때에는 차가 없어서 수퍼마켓에서 무거운 물을 사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다음 방문할 때까지 마실 물을 늘 충분히 챙겨주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기숙사에서 물은 싼 품목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만큼 값어치가 있다.

 

집에서 휴가를 마친 현열이를 데리고 차로 유펜으로 향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가 푸념을 털어놨다.  본인이 운동하러갈 때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의 폴란드 스프링 물 한 병을 덥석 집자 '너는 물을 사지 않냐?'는 말을 던져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퍼마켓에서 50전도 채 안되는 물 한 병이 그가  평생지기로 여겼던 친구에 대한 의구심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한 두 병도 아니고 박스 채로 널려있었기에 충격이 더했다고 한다. 현열이는 아마도 이 친구가 정말 입이 타는 사막에서 마지막 물 한 병을 함께 나눠마실 수 있을까 의심했을 것이다.  또는 그 물값의 몇 천배 이상을 줄수 있는 자신을 너무도 몰라준다는 생각에 답답했을 것이다. 그 친구 입장에서도 자기 물병을 맘대로 집어가는 현열이를 보고 물의 값어치를 떠나서 다른 깊은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열이는 그 친구에게 그 점 이외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둘의 앞날에 어떤 암운을 던지고 있는지 몰라 찜찜해 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그가 물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부부는 삼남매에게 특별히 돈 쓰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그저 필요한 옷은 주로 고급 백화점을 몇 번 돌고 온 고급 브랜드를 디스카운트 백화점인 마샬같은 데서 사주었고, 그가 찜질 한 옷이 있으면 조금 비싸도 명절이나 생일등을 핑계로 사주기도 했다. 남을 위해서 쓰는 데는 조금 풍성히, 우리를 위해서는 약간 빠듯히 썼다. 그래서 현열이는 돈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좋은 일에 쓸 수 있게 하지만, 낭비하면 그러한 곳에 쓰는데 제약을 줄 수 있다고 생각힌다. 현재 상황에서 그에게 제일 큰 관심사는 부모님이 학비를 계속 낼 수 있을까 뿐이다.  현열에게 용돈을 주려고 하면 늘 '정말 필요없어요."하고 서로 싸우는 경우가 태반이고 결국에는 그의 방에다 던지고 올 때가 많았다.  그는 만약 자신이 돈 버는 데 신경 쓴다면 천문학적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비록 지금 그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없지만, 마음은 항상 부자이며 돈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나도 가깝게 여겼던 친구로부터 현열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기 물건을 신주 모시듯이 한다. 모든 물건을 아끼면서 깨끗이 쓰는 것은 좋은 습관이나, 그 물건이 친구보다 소중하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면 당하는 사람은 비참해 진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니것 내것 가리면서 친구하자는 얘기이다. 그러한 그의 뿌리깊은 발상은 항상 나를 숨막히게 했다. 만날 때 마다 비슷한 느낌을 받고 한 숨을 푹 쉴 때면, 아내는  "화내지 말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세요." 라고 말한다. 공자 왈 "친족관계를 끊지 못하듯, 옛 친구와의 우정도 싫다고 해서 끊을 수 없는 법"이란다.

 

아내로 부터 해답(?)을 찾은 나는 현열이게 "너, 기도해봐"란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넘치게 싸 가지고가서 그와 친구들이 나눔의 정을 서로 느낄 수 있게 신경을 쓰고있다.

 

박중련

02-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