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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 박승연(Rebecca Pak)

박중련 2009. 2. 6. 13:04

 

 

승연이는 내 나이 39세 아내 나이 36세에 난 늦동이다. 큰 딸과는 11살 둘째인 아들과는 9살 차이가 난다. 언니와 오빠는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범생이었지만 승연이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4살 때까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1살 때는 말을 웬만큼 하는 편이었으나, 한국에 1주일 다녀온 후 부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아무 테스트도 받을 수가 없었다. 소아과의사가 청각테스트와 정신감정을 권해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모두 정상이었다. 한 의사가 자폐증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서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그 의사는 1%의 가능성을 두고 무심코 내 뱉은 말이었지만 그때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자폐증이라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렸겠지만 그는 자폐증은 아니었다.

 

승연이는 여러 테스트를 통해 언어지체로 판정받은 후 카운티의 특수교육부와 연결이 되었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맞는 교육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승연이가 만 4살 때 학군산하 예비학교(nursery)에 다니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예비학교는 사립이지만 학군에서는 언어지체를 포함한 학습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자체예산으로 조기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러한 학생들 중에는 다운 증후군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지체장애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언어지체를 갖고 있어서 함께 교육을 받았다. 승연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던 날, 아내는 매우 심한 장애아들 속으로 사라지는 승연이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헤아리지 못하며 정신없이 복도를 뛰어나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자녀로 인한 진료비 부담 때문에 집안의 정상인가족들이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지만 미국에서는 18세까지 학군에서 장애아동의 재활과 교육을 책임진다. 보통 한 학군에 장애아동 숫자가 약 10%이상 정도 되는데 이들에 대한 교육예산은 전체의 15%내지 20%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장애인 복지시설을 위해 유산을 남기는 경우도 있어서 지역에 따라 시설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2006년에 타계한 아칸소주 부지사 윈스롭 폴 록펠러(Winthrop Paul Rockefeller)는 자녀 7남매 중 6째인 죤(John Rockefeller)이 다운증후군이었다. 그는 아들로 인해 그 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후에 같은 장애를 가진 딸 그레이스(Grace Rockefeller)를 홍콩에서 입양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칸소 리틀락(Little Rock)에 '아카데미 엣 리버데일(Academy at Riverdale)'이라는 최첨단 장애인 교육시설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정보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부모들이 서로 교환해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도 어렸을 때 언어발달장애, 학습장애, 정신집중장애 모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가 그 증세들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 부모들에게 승연이가 처한 사실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고 노력했었다. 임신한 사람에게는 임산부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주위에서 언어지체 장애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아동들을 위한 교육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어려서 장애를 고쳐주어야 커서 비용을 덜 수 있다는 생각에 장애아들을 위한 시설과 협조체계가 잘 되어있다. 우리는 승연이를 통해 언니 지연이와 오빠 현열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모두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올라왔다는데 놀랐다. 이 말은 특수교육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영재교육 뿐 만아니라 장애인교육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며 그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수교육은 학군이 속해있는 공립학교에서나 사립인 보딩스쿨에서 받을 수 있다. 피터슨 가이드에 의하면 미국에 약 일백 개가 넘는 보딩스쿨들이 학습장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보딩스쿨에서는 정신집중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 정서적 또는 행동 문제(emotional and behavioral problems), 머리는 좋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underachieving), 난독증(dyslexia), 문제아(self-destructive adolescents)등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립학교와 같이 대부분 일반 학교 커리큘럼에다 특수교육 부분을 접목시켜 가르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인 보딩스쿨로는 죤 듀이 아카데미(The John Dewey Academy)가 있다. 이 학교는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지만, 소외되고(alienated), 노여워하고(angry), 자멸적인(self-destructive) 학생들에게 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정신치료하며 훌륭히 교육시키고 있다. 학비가 연 8만 달러 드는데 학생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데 학군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면 교육법 변호사의 도움을 구해서 학군에 청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명문 보딩스쿨들은 정신집중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앤도버는 1999년 한 정신집중장애 학생을 성적이 나빠서 퇴학처분을 내려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 소송서류에 의하면 앤도버는 그 학생에게 시험 볼 때 시간도 더 할애하고 필수적인 외국어과목도 수강하지 않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을 했었는데도 소송을 당했다는 것은 이러한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뉴저지 주지사이었던 토마스 케인이 난독증이었고 말을 더듬었지만 세인트 마크스를 졸업하고 프린스톤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들 중에 한 명이 되었다. 마약을 사용하거나 싸움을 일삼는 문제아동들만을 취급하는 보딩스쿨도 있는데 성격상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승연이와 같이 언어지체가 있는 아이들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정신집중장애 증세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아이들은 아예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 다닌다고 한다. 그도 한때 정신없이 돌아다녔으나 다행히 공부 할 때는 집중력이 있었다. 그는 아마 비전형적인 정신집중장애 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나이가 들면서 그 증세는 모두 사라졌다.

 

특수학교에서는 언어지체 장애 학생들에게 말을 하게끔 자극을 주는 교육을 한다. 학교에서는 동화를 읽어주고 비데오를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한다. 가끔 학부모 참관 시간에 가서 보면 가르치는 내용과 선생님들의 열정이 거의 완벽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고는 그가 꼭 말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러던 중 약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두 인형을 갖고 서로 대화를 시키며 자신이 인형 대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그가 말하는 모습을 재현시키려고 인형을 주고 묵묵히 한참동안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 후 얼마가지 않아 식구들에게도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부산히 돌아다니는 행동도 서서히 없어졌다. 그러한 차도가 있어도 우리는 승연이를 여름방학동안에 카운티에서 주간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보냈다. 단 일분이라도 정상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고 백분 활용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승연이는 유치원이 끝날 무렵에는 제법 긴 문장을 지어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법이 틀리는 경우가 많았고 마치 갓 이민 온 사람들 같이 문장이라기보다는 단어들을 연결해서 의사표시를 했다. 특히 불규칙동사나 삼인칭 동사의 변형부분은 자주 틀렸다. 그러던 것이 어느 덧 발전하여 4학년인 지금은 아예 자신의 삶을 생방송하듯 끊임없이 말을 하고 다니다. 그의 언어실력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말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디었다. 하루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그의 친구가 집에서 승연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승연이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서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 장면을 보고 우리부부는 처음으로 공부를 힘들어하는 학생의 부모 입장이 되어보았다. 혹시 공부를 잘하던 큰 딸 지연이와 아들 현열이도 다른 학생들에게 그러한 태도로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아이들 부모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었다.

 

나는 승연이와의 경험을 통해서 고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이 사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승연이는 같이 공부하던 장애아들 중에서 회복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다른 부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승연이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아주 심한 상태에 있는 학생의 부모 마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가 크고 적던 간에 부모의 입장에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녀사랑과 보람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연이는 4학년이 되어서야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가 그곳을 나오기까지 우리는 학교 관계자들과 많은 회의를 가졌다. 그들은 그가 전혀 말을 못하던 상황부터 봐왔기 때문에 그가 문법이 틀리게 말하는 것도 장애의 한 맥락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은 영어를 잘 못하는 한인 이민자들을 모두 장애라고 보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일단 어느 시스템과 연계가 되면 본인이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는 완벽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정상아로의 분류를 보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특수 프로그램이 더 이상 자녀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그곳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승연이의 경우 본인이 학과 시간에 따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꼈고 학과성적도 향상되어서 더 이상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빨리 일반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과 후나 방학을 이용해 뒤쳐진 공부를 따라가게 했었고 마침내는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었다.

 

그에게는 지금도 자신이 1-2학년 때에는 공부를 아주 못했던 학생이었다는 기억이 상처로 남아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문제아도 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아들은 그저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며 남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학생들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승연이가 겪었던 정신적 상처 때문에도 그렇게 발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위해서 그가 갖고 있는 장점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운동도 시켜보았고, 악기도 다루게 하였고, 그의 그림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는 말을 못하던 시절 그림으로 생각을 나타냈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감정표현이 항상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최근에 그의 그림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2007년 5월 8일 승연이는 뉴저지주 아동 가족국(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ies)이 주관하는 주내의 모든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참여하는 연례 달력(Calendar) 그림 콘테스트에서 최종 15명 학생 안에 선발되어 주지사 관저에서 상을 받았다. 자신의 그림이 내년도 아동 가족국 달력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승연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그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것 같아 흐뭇했다. 그리고는 4학년 말에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수학, 영어, 과학 표준시험에서 모두 상급(Advanced Proficient)을 받았다. 이 종합점수는 뉴저지 주에서 상위 10% 정도에 해당되는 믿기지 않는 결과이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그에게서 가능성을 옅 볼 수 있었다.

 

그는 인간적인 재능에서 남들보다 더딘 발전을 보였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그가 장애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편견에서 자유스러워지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어느 날 동네공원에서 한 정박아 소녀가 그네를 타려고 왔다. 그곳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의 외모 때문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으나 승연이는 그 소녀의 그네 타는 것을 도우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우리부부는 그를 통해서 장애아들의 교육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고 사회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충격적이었으면서도 교육적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재활에 힘써서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승연이가 앞으로 아름다운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자라나 자신이 겪었던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중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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