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가 집안은 아마도 케네디가라고 할 수 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JFK’)은 30살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어 6년간을 하원의원으로, 7년을 상원의원, 그리고 암살되기 직전 2년을 대통령으로 15년간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으로 보냈다.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RFK)도 36세때 형인 JFK 대통령 밑에서 연방 법무부장관을 맡았고, 40세에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43세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캘리포니아주 예선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안타깝게 암살되었다.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Ted)는 32세때 매사추세츠주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47년간을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수많은 법률을 체출하고 가결시켰다. JFK의 세째 여동생인 Eunice는 스페셜올림픽 창시자이고, 그의 남편 로버트 슈라이버는 평화봉사단 창설 멤버였고, 주불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민주당 부통령 후보 런닝메이트도 했다. 다섯번째 여동생인 Jean은 주 아일랜드 미국대사를 역임했으며 일반국민에게 최대 영광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조카들 중에서는 Joseph Kennedy II가 매사추세츠 주 연방하원의원을 12년, Pat Kennedy가 로드아일랜드 주 연방하원의원을 16년, Kathleen Kennedy가 메릴랜드 주 부지사를 8년간 지냈으며, 지금은 모두 이혼했지만, 조카사위인 아놀드 슈와즈네가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8년간 지냈고, 또 다른 조카사위인 마리오 쿠오모는 연방주택장관을 지내고 뉴욕주 주지사로 맹활약하고 있다. JFK의 딸인 캐롤라인도 현재 주일 미국대사로 있다.
손자 대에서는 Joseph Kennedy II의 아들 Joseph Kennedy III 가 31세란 어린 나이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아래 가족사를 보면 수 많은 비극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밝은 면이 있다면 바로 RFK의 장손인 Joseph 과 그의 쌍둥이 형제 Matthew 이다. 둘은 보스턴의 명문 데이스쿨인 Buckingham Brown & Nichols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 Joseph III는 평화봉사단을 복무하고 하버드 법대를 나와 Legal Aid룰 포함한 public interest law 분야에서 일을 했다. Matthew는 하버드 MBA를 나왔지만 비즈니스 보다는 공직에 관심에 두고 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갖고 있다.
아일랜드계 카톨릭 집안이기 때문에 다출산을 해서 JFK의 아버지를 위시로 3대를 통 털어 배우자를 제외한 자손이 39명이나 된다. JFK의 부모 2명, 형제자매 9명, 그 다음세대인 자식과 조카 28명를 포함 39명의 학력통계를 알아보았다. 고등학교는 밀턴(5명), 조지타운 프렙(6명), 앤도버 (3명), 초트(2명), 미들섹스(2명), 엑시터(1명) 순이다. 대학은 하버드학부(13명), 브라운대학(6명), 예일대학(2명), 스탠포드 (1명) 순이다. 대학원은 법대에 많이 치중되어있는데, 버지니아 법대(5명), 컬럼비아 법대(2명), 하버드법대(1명), 예일법대(1명) 순이다.
JFK 의 외할아버지인 John F. Fitzerald는 보스턴 시장과 매사추체츠 주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했고, JFK 의 아버지 Joseph P. Kennedy는 주영 미국대사와 초대 증권감독원장을 지냈다. JFK 의 형제 세대에서는 대통령, 법무부장관, 상원의원, 하원의원등 수많은 정치인들을 배출해 냈고, 조카세대에서도 하원의원 2명, 주일대사, 사위들도 캘리포니아와 뉴욕주 주지사가 나왔다. 그리고 5대 째에서 또 RFK의 장손자가 31세 나이로 최근에 매사추세츠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5대에 걸쳐서 모두 최소 연방하원의원 이상을 지낸 가문은 케네디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JFK의 형제 자매 9명을 나이 순으로 분류해서 본인과 그 자녀세대의 살아온 모습을 알아보았다.
1.Joseph Patrick Kennedy, Jr. (7/25/15-8/12/44)
케네디가의 장자인 조셉은 데이스쿨인 노블스 (Nobles and Greenough School)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다녔고, 뉴욕시 브롱스에 있는 데이스쿨인 Riverdale Country School를 다니고 , 코네티컷에 있는 보딩스쿨인 초트를 졸업했다. 하버드학부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조셉의 외할아버지이며 보스턴 시장이었던 John F. Fitzgerald는 그가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될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아쉽게 해군 복무중 비행기 폭파사고로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john F. Kennedy (5/29/1917-11/21/1963)
JFK도 형 조셉과 같이 명문데이스쿨인 리버데일 컨트리 스쿨과 보딩스쿨인 초트, 그리고 하버드 학부(국제정치학)를 1940년에 졸업했다. 연방하원의원 (1947-1953), 매사추세츠 주 연방상원의원(1953-1960), 미국대통령(1961-1963)을 지냈다. 30살에 연방하원의원. 36살에 연방상원의원, 44살에 미국 대통령이 되어 46세에 암살되기까지 16년간을 공직에 몸담았다.
첫째 Caroline Kennedy는 뉴욕시의 명문 데이스쿨인 브릴리스쿨과 보딩스쿨인 콩코드아카데미, 하버드 대학, 컬럼비아법대를 졸업했다. 캐롤라인은 현재 주일 미국대사로 있다. 둘째 John F. Kennedy, Jr.는 뉴욕시의 컬리지에트, 앤도버, 브라운대학(미국사 전공), 뉴욕대 법대를 졸업하고 맨해튼 검찰청 검사를 지냈다. 그후에 George라는 매거진을 인수해서 의욕적으로 운영했다. JFK. Jr. 는 1999년 사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위해 경비행기를 직접 몰고가다 추락해 39세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3. Rosemarie Kennedy (9/13/1918-1/7/2005)
로즈매리는 IQ 60-70 의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가 외조부모가 6촌간 이어서 우생학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23살에 신경정신과 수술을 받다가 식물인간이 되어 평생 병원신세를 지다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4. Kathleen Agnes Kennedy (2/20/1920-5/13/1948)
뉴욕시의 명문데이스쿨 Riverdale Country School을 졸업하고 영국에 있는 Queens College를 포함해서 여러대학에 재학했다. 24세에 영국의 귀족 William John Robert Cavendish와 결혼했으나 실제로 5주간만 신랑과 함께 했었고 4개월 후에 남편이 2차대전 중에 벨기에에서 전사하면서 과부가 되었다. 그녀가 28세되던 해 새로운 애인과 파리에서 영국으로 비행기타고 돌아가던 중 불란서 Cevennes Mountains에 추락하면서 세상과 이별했다. 어머니 눈밖에 내논 자식이어서 결혼식에는 오빠인 Joe만 참석했고, 장례식에는 아버지만 참석했다고 전한다.
5. Eunice Kennedy Shriver (7/10/21-8/11/09)
Eunice는 Manhattanville College를 재학했었고, 스탠포드대학에서 사회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주불 미국대사를 지내고 맥거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부통령 런링메이트였던 Robert Shriver , Jr. 와 사이에 자녀 5명 을 두었다. 남편은 평화봉사단 창설 멤버이고 그녀는 장애인들을 위한 스페셜 올림픽 창설자다. 아마도 JFK, RFK, Ted 다음으로 미국사회에 알려진 가족일거라고 생각된다.
맏아들 Robert Sargent Shriver III세는 엑시터를 나오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일대와 예일법대를 졸업했다. 이들 부자는 예일대의 비밀소사이어티인 The Scrolls & Keys의 멤버이다. 이 조직은 예일에서 매년 대학 4학년생 15명을 선발하는데, 부시 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이 속해있던 스컬앤 본스와 라이벌 관계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야구팀에 투자도 했고, 스페셜 올림픽 관련 영상을 프로듀스도 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매제였던 슈와즈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일 때부터 언젠가는 캘리포니아 주 법무부장관에 도전할 거라고 늘 이름이 거론되어 왔었다. 2014년 1월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둘째인 Maria Shriver는NBC-TV의 앵커워먼이며 몸짱 영화배우이자 공화당 출신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Arnold Schwarzenegger와 결혼해서 화제를 낳았다. 아놀드가 집의 가정부 와 혼외자식을 둔 것이 밝혀 지면서 이혼했다. 셋째인 Timothy Shriver는 St. Albans와 예일대를 졸업했으며 15년간 공립학교에서 스페셜(장애인)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을 지내다가, 현재는 스페셜 올림픽 회장으로 있다. 넷째인 Mark Kennedy Shriver는 조지타운 프렙과 College of Holy Cross, 그리고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했으며 현재 아동구호연맹(Save the Children)의 전략구상담당 선임부사장으로 있다. 2002년에는 메릴랜드주에서 연방하원의원 민주당 예선에 출마했다가 아깝게 떨어졌다. 막내인 Anthony Kennedy Shriver는 조지타운프렙과 조지타운대학에서 역사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정신과 지적장애인들에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비영리단체인 Best Buddies International을 창설해서 회장으로 있다. 가끔 플로리다 주지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6. Patricia Kennedy Lawford (5/6/24-9/17/06)
Patricia는 영화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일찍이 허리우드로 떠났고 그곳에서 영국영화배우Peter Lawford를 만나서 결혼했지만, Peter가 알코올 중독과 여성편력이 심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다. 31살에 결혼생활을 시작해서 43살에 이혼하고 평생 알코올중독으로 시달리다가 혀암으로 2006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녀 4명도 각각 알코올 중독, 마약문제로 힘들게 지냈다. 큰 아들 Chris Lawford (3/29/55-5/1984)는 미들섹스, Tufts 대학, 보스턴 컬리지법대를 졸업했으나 고등학교때 맛들인 마약때문에 평생 고생하다가 29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Chris가 태어났던 날에 같은 병원에서 아버지의 여자친구이며 유명 영화배우인 Judy Garland와 사이에서 배다른 형제가 태어난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다른 자녀들의 대한 내용은 없다.
7. Robert F. Kennedy (11/20/25-6/6/68)
로버트 케네디(“RFK”)는 30살인 1965년에 뉴욕주 연방상원의원과, 36살에 법무부장관을 지내고 43때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에서 승리하 후 암살되었다. RFK는 밀턴아카데미와 하버드대학(행정학) 졸업했으며, 대학에서는 미식축구팀 멤버로 활약했다.법무부 장관시절 흑인민권운동과 마피아와 같은 조직폭력배 소탕에 정열을 쏟았다. RFK는 슬하에 11자녀를 두었다.
첫째인 Kathleen Kennedy Townsend 는 Kennedy 가문 동 세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남편인 Townsend의 거주지인 메릴랜드 주에서 1994년에 부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8년후 주지사 선거에서는 1%차로 아깝게 패했다.
둘째 Joseph P. Kennedy II는 매사추세츠 주 출신 연방하원에 출마해 12년을 지냈다. 시드웰 후렌즈, 조지타운 프렙, 밀턴과 UC Berkeley를 다녔으나, 고등학교 졸업은 공립학교에서 하고 대학도UMass 보스턴 캠퍼스에서 졸업했다. 자동차 운전 부주의로 남동생 David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남동생의 여자친구는 불구가 되게한 가슴아픈 기억을 갖고있다. 그의 아들 Joseph Kennedy III는 34세 나이에 현재 매사추세츠 주 연방하원의원으로 있다.
셋째 Robert F. Kennedy, Jr. 는 어렸을때 헤로인 취득으로 강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버드와 버지니아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시 검사로 일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을 했다 .18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인사이에 자녀 4명이 있으며 이혼을 준비하던 중 부인이 자살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2014년에 재혼을 했다. 캐롤라인 케네디와 에드워드 케네디가 오바마를 지지했을때 그와 누나 Kathleen 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넷쩨 David Kennedy는 미들섹스와 하버드를 졸업했고, 글쓰는 재주가 있어 책도 여러권 저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맏형 Joseph II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척추를 다쳤을때 통증치료하면서 약물중독이 됐다. 그로인해 요양원신세도 지다가 33살 한창 젊은 나이에 코캐인 과용으로 사망했다.
다섯째 Courtney Kennedy Hill은 밀턴을 졸업하고 UC Berkeley와 아일랜드의 명문 Trinity College등 재학했으나 졸업은 못했다. Courtney의 두번째 남편인 Paul Michael Hill은 북부아일랜드의 유명한 혁명운동가인 The Guildford Four중 한 명으로 15년간 감옥생활을 한 후 부당한 방법으로 증거와 증언을 채취했다고 해서 후에 무죄를 받았던 인물이다. 둘은13년 결혼생활 후 2006부터 별거중이다.
여섯째Michael Kennedy 는 하버드와 버지니아 법대를 졸업하고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 후랭크 기포드의 딸과 결혼했다. 마이클은 자녀의 베비시터(당시 14살) 와 혼외관계라는 것이 알려져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고, 스트레스로 알코올중독 치료소도 다녔다. 그후에 부인과 별거 중이었는데,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스키를 타고 미식축구를 하다가 나무에 부딪혀 41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맏형인 Joseph II가 설립한 Citizens Energy Corp. 의 대표를 맡았었다.
일곱번째 Mary Kerry Kennedy Cuomo 버몬트에 있는 Putney School과 브라운대학과 보스턴 컬리지 로스쿨을 나왔다. 인권운동가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센터를 설립했고, 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의 Leadership Council의 회장도 역임했다. 현 뉴욕주지사 마리오 쿠오모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슈와츠네거와 이혼한 사촌 마리아 슈라이버는 남자가 바람을 피웠던데 반에, 이번 건은 여자인 Mary가 어느 폴로 선수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뉴욕포스트(9/1/2014)에 의하면 슈라이버도 남편이 가정부와 바람이 나기 전부터 선거 전략가인 매튜 다우드와 사귀는 관계였다고 하고 이제는 공식적인 커플로 지내고 있다. 케네디가 사람들에게 다른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인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없다.
여덟번째, Christopher George Kennedy 는, 조지타운 프렙, 보스턴 컬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노스웨스턴 켈로그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시카고에서 Merchandise Mart Properties 의 사장으로 있는데, 그 회사는 시카고 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큰 상업용 건물(The Merchandise Mart)을 소유하고 있다. 친척 중 유일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그는 삼촌, 사촌, 형제 자매들이 선거에 출마를 할때면 늘 fund raising event를 열어주곤 했다. 그는 일리노이 대학의 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그도 오바마가 일리노이 상원의원직을 놓고 대통령이 되었을때 상원의원 출마를 심각히 고려했었다.
아홉번째 Max Kennedy 는 앤도버를 잠시 재학하다, 퀘이커계열 데이스쿨인 Moses Brown School에서 졸업했다. 하버드 와 버지니아 법대를 졸업했다. 책 두권을 저술했는데 모두 좋은 리뷰를 받았다. 필라델피아 검찰청에서 3년간 검사로 지낸 후 민권, 인권 ,환경에 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열번째 Douglas Harriman Kennedy 는 조지타운 프렙과 브라운대학을 졸업했고 Fox News 에서 비중있는 리포터로 일하고 있다.
열한번째 Rory Kennedy 는 RFK가 암살당한 후 6개월만에 태어난 유복자이다. 포토막 스쿨과 브라운대학을 졸업했으며, 사회의 conscience를 넓히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해서 필름을 프로듀싱을 했다. JFK, Jr. 부부가 1999년 7 월 19일 경비행기를 직접 운전하고 오다가 추락해서 사망했는데, 로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다 참사를 당했다.
8. Jean Kennedy Smith (2/20/28- present)
Jean Kennedy는 Stephen Edward Smith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재정분석가로 케네디집안의 뉴욕시 빌딩을 관리했고, 집안의 신탁계좌들을 돌보았다. 케네디 집안의 집사와 같은 역활을 맡았다. Jean은 주 아일랜드 미국대사를 5년간 역임했으며 Very Special Arts 라는 장애인들이 미술에 관심갖고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그러한 공로로 오바마 대통령으로 부터 민간인 최고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Jean은 Manhattanville College를 졸업했는데, 여기서 RFK의 부인과 Ted의 부인과 친분을 맺어 그들이 결혼하는데 한 몫을 했다. 케네디 9형제 자매중에서 유일한 생존자이다.
네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 Stephen Smith, Jr. 는 뉴욕시 명문데이스쿨 컬리지에트 스쿨, 하버드대학, 컬럼비아 법대를 나와 변호사다. 둘째 William Kennedy Smith은 코테티컷 주에 있는 Salisbury School, 듀크대학, 조지타운 의대를 졸업했다. 내과의사인William은 플로리다 주 팜 비치에서 동행한 여자를 강간한 혐의로 세상을 떠뜰석하게 했었다. 유명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죄를 선고 받아서, 미국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많았다. 의사인 그는 the Center for International Rehabilitation을 설립하고 전세계의 지체부자유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외 Physicians Against Land Mines(지뢰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도 창설했다. 셋째인 Amanda Smith는 뉴욕시의 명문 데이스쿨인 스펜스 스쿨, 하버드학부, 하버드 대학원에서 스페셜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넷째인 Kym Smith Tucker는 베트남 출생의 입양한 딸로 브라운대학을 졸업했다.
9. Edward M. Kennedy (2/22/32-8/25/09)
Ted는 명문 중등과정 데이스쿨인 Fessenden School(6,7학년)과 밀턴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 진학했다. 하버드에서는 미식축구선수를 했으며, 역사학과 행정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Ted는 형인 JFK가 대통령 선거에 나갈때 매사추세츠 주 연방상원의원을 30세에 젊은나이로 물려받아 47년간을 재임했다. 1969년 7월18일 Chappaquiddick 사건에서 여비서와 함께 탄 차가 강물에 빠졌을데, 사망한 여비서를 놔두고 사건현장을 떠났던 것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어서 결국 본인의 1980년 미국 대통령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카터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경제와 사회 정의를 외친 진보의 거물 상원의원으로 국민의료보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Ted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외동딸 Kara Kennedy는 National Cathederal School과 Tufts 대학을 했다. 이혼녀로 42세에 폐암에 걸렸고, 51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둘째인 Edward M. Kennedy, Jr. (“Ted, Jr.’) 는 St. Albans School과 Wesleyan대학을 졸업했다. 코네티컷 법대를 나와서 변호사로 있으면서 The Marwood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American Associ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의 이사로 있다. 막내인 Pat Kennedy는 앤도버와 Providence 대학을 나와 로드 아일랜드 주 연방하원의원을 16년간 지내고 2011년에 정계에서 은퇴를 했다. Ted Kennedy 상원의원과 아들 Pat Kennedy 하원의원 모두 알코올 과용문제를 갖고 있었다.
결론
케네디 가문이 마치 꿈속의 부러워하는 집안일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가, 가족사를 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 어두운 면을 사람들은 케네디가의 저주(The Curse of the Kennedys)라고 표현한다. 9형제 자매 중에, 첫째가 29세에 전쟁에서 사망하고, 둘째 JFK 대톨령의 암살, 셋째 Rosemary Kennedy 의 60여년간의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일, 넷째, Eunice Kennedy의 29세때에 비행기 추락사 일곱번째 RFK 상원의원의 암살은 당대에서 만 일어난 일이고, 그 이후 세대에도 수많은 비극적 일들이 있었다.
독실한 아이리쉬 카톨릭 집안이어서 자녀들은 조지타운 프렙과 같은 카톨릭 계통 학교로 주로 진학시켰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는 아주 철저했다. 집안식구의 1/3이상이 하버드 학부(13명)에, 그리고 거의 같은 숫자가 버지니아 법대(5명)를 포함한 유명법대에 진학했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역사학, 행정학, 국제관계학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곤 대부분 선거직에 출마했거나 당선되어서 Public Service활동을 하거나 장애인들을 위한 비영리재단의 창립 또는 운영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시람들이 알코올이나 마약문제로 고생을 하거나 세상을 일찍 떠났는데 남녀문제로 송사에 연루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가족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해 그들을 돕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집안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정치인인 친척의 도움을 받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부시대통령 가문의 형제들이 여러 이권에 개입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모두 한결 같이 나를 위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