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gle 장학재단에서 2011년 대학 졸업생으로서 연설을 하는 현열이의 모습 (2011.8.7)
2003년도컬럼비아대학 졸업생이면서 Eagle 장학생 출신인 현재 미 연방 국토안전부 검사로 일하는 동문의 후배들을 격려하는 연설
Eagle 장학재단 창시자인 Mr. Ditri와 그의 딸이면서 현재 재단의 실무일을 보는 Brenda의 모습
재단 졸업생들의 연설행사에 초대된 학부형들
재단의 동기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현열이의 모습
Eagle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Mr. Ditri의 집이며 재단의 졸업생 파티가 열렸던 곳
정원에서 재단 동기생과 선배들이 어울리며 담소하는 모습
Eagle 장학재단 6명 동기와 선배들과 함께 단체사진 촬영
거실에서 점심식사 하는 광경
재단 1년 후배인 백인 유펜학생
재단 후배 여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Mr. Ditri와 patio헤서 대화를 나누는 현열이의 모습
재단 사무총장인 Brenda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4년전 재단 장학생을 지원했을때 인터뷰를 위해서 기다리던 Mr. Ditri의 Waiting Room
Greenwich CT에 있는 재단 사무실겸 Mr. Ditri의 집
2011년 8월 7일 드디어 그가 Eagle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지 4년이 지나서 장학생 졸업발표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매년 6-8명정도의 장학생이 선발하고 멘토를 정해주거나 후배들을 멘토링하면서 재단이 추구하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맞기위해서 노력하며 지냈다.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는 편안한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재단이 요구하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경험을 재단 식구들과 함께 나눴다. 연설에 약한 현열이는 그 전날에 대강 무슨 말을 할 건지 정리를 해놓고, 같이 차를 타고 재단회의장으로 가면서 약간의 연습을 했다. 좀 불안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별로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메세지가 돋보였다. 재단의 설립자인 Mr. Ditri씨는 이제 이 학생들이 사회에 나아가 서로 넷 워킹을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선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거의 모두가 출신대학보다 더 나은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사회에서는 모두 최고의 직장에서 막중한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재단은 그동안 배출한 80여명의 졸업생 외에 더 이상 학생들을 받지 않기로 했다. 다시 말해서 이 모임은 펀드로 치면 closed 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기존 멤버들간의 교류는 더 활발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재단의 문호를 닫은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재단 장학생들이 모두 충분한 장학금을 제공하는 아이비리그에 다니기 때문에 장학금에 대한 메릿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른 방향으로 재단을 운영할것이라고 말했다. Mr. Ditri씨를 정점으로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이글 출신들은 서로 연결하게 되어있다. 그가 말한 동문들의 거취를 종합해 보니까 거의 약 30% 정도가 하버드의대나 법대에 진학한 것 같았다. 현재 맨해튼 최고 로펌에서 일하는 동창생들만 5명이 있다고 한다. 매년 4-6명씩 장학생을 선발해서 10여년동안 80명정도를 배출한 재단의 성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이다.
졸업생들의 행적에 대한 화두는 당연히 이 재단 출신으로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20대 후반 흑인인 Michael Blake이었다. 그가 백악관 직책을 그만두고 2012년 오바마 대통령 선거에서 넘버 2 캠페인 디렉터로 내정되었다고 알려주었다. 현열이가 정치에 관심이 생기면 Mr. Ditri씨가 Mr. Blake에게 전화 한통만 하면 연결될 수 있다. 앞으로 Eagle 장학재단이 현열이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모르지만 그도 재단이 추구하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그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아래는 지난 번 재단에 대해서 썼던 브로그를 카피해 온 것이다.
(아마도 이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 분들은 사진의 비중이 상당히 많아진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사진촬영에 대해서 개인지도를 받았다. 나의 미술적 감각에 사진학과출신 강사로 부터 배운사진 찍는 테그닉을 이용해서 졸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이 모임의 성격과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사진을 통해서 진지한 학생들의 모습과 한 재산가의 진심어린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열정, 그리고 가족적이면서도 학생들을 엄격히 지도하는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현열이는 지인으로부터 이글장학재단에 대해서 전해 듣고 무심코 그곳에 지원서를 보냈었다. 그때는 이 재단이 그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지 전혀 몰랐었다. 독수리가 재단의 상징인 이유는 이 생명체가 스스로 높은 창공을 향해 올라가서 향로를 개척해 나가는 조류계의 지도자로서 재단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미래의 지도자 역할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이곳에 지원하려면 먼저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재단 소재지에서 차로 2시간 반경이내에 거주하는 대학입학 예정자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대학 4년간 학생들을 가까이서 도와주어야 하는 재단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재단이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 시에 있어서 뉴욕 시 전체가 이 반경에 포함되기 때문에 결코 적은 지역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장학금을 필요로 하는 가정의 자녀들이어야 한다. 그들이 학비가 비싼 명문대학에서 빚을 많이 지고 졸업하면 지도자의 길을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원자격이 되면 서류 전형과 두 번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매년 400여 지원자들 중에서 약 8-10명 정도를 선발하는데, 현재 대학 4년에 걸쳐 35명 정도의 이글장학생들이 있다. 장학금 액수는 이 장학금이 다른 곳에서 받는 장학금을 줄지 않게 하는 선에서 최고 연 1만 달러까지이다. 장학금은 재단이 요구하는 5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대학 4년간 매해 받을 수 있다.
첫째, 새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그해에 이룩할 각자의 목표를 설정하는 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매달 그 목표가 어떻게 이루어져가고 있는지 재단에 보고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겨울방학 때는 재단이 지정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하며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학생회나 동아리 모임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아야 한다. 예를 들면 1학년 때에는 조직에서 활동적으로 일하고, 2학년 때에는 더 열심히 일해서 좋은 평판을 얻고, 3학년 때에는 부분별 지도자 역할을 하고, 마지막 해에는 회장, 편집장, 주장 등 최고 지도자가 되어야한다. 현열이는 유펜에서 1학년 때 대학생의회에 들어갔고 2학년 때에는 학생생활 분과위원장 직을 맡고 있다.
셋째, 후배에게 멘토링을 해주고, 선배로부터는 멘토링을 받아야 한다. 대학 1학년 때 현열이의 멘토는 와튼경영대학원과 유펜문리대 국제관계학과의 복합 석사학위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주재원생활을 한 중국어를 잘하는 백인 학생이었는데 지도력을 강조하는 이 재단 출신답게 막강한 와튼 재정클럽Wharton Finance Club의 회장을 지냈다. 현열이도 1학년 때 중국어를 선택하였고 여름방학 때는 프린스턴대학이 북경사범대학에 설치한 중국어 프로그램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현재 와튼학부와 유펜문리대 동아시아학과의 복합 학사학위 프로그램에 있다. 현열이가 멘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데에는 두 말할 여지가 없다.
넷째, 매주 1시간 이상씩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재단의 궁극적인 목표인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실천하며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현열이도 유펜 부근의 열악한 초등학교에서 개인교사 봉사를 하고 있다.
다섯째, 재학 중에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하며 성적표를 매학기 제출해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방학 때에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인턴을 하면서 좋은 실무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최상의 학점을 유지하고 있다.
1994년에 이 장학재단을 설립한 디트리 씨는 예전에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에서 파트너를 지냈었고 후에 컨설팅 등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서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시키고 사회가 요구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돕고 있다. 이 재단에서 4년간의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과 뛰어난 지도자 경험을 갖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약 60여명을 배출했는데 그 중에는 2008년 바락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케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만 26세 흑인 지도자 마이클 브레이크Michael Blake도 있다(타임, Inside Obama's Iowa Ground Game, 2007.12.12). 이 재단은 장학금을 배분하는 단순한 업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사회에서 지도자로 우뚝 서는데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