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승연, 아내, 그리고 현열이
내 생일에 현열이가 필라델피아에 와서 이틀간 묵고 내려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집에서는 가족들 생일을 챙기는 전통이 생겼다. 매년 생일마다 새로운 선물을 챙기는 것은 힘들다. 바라기는 애플이 매년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서 그것을 사서 선물하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번에 나는 현열이와 승연이로 부터는 사진들을 2-3초간격으로 돌려서 디지탈로 볼 수 있는 후레임을 선물로 받았다. 시카고에 있는 지연이는 아빠가 tea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좋은 tea set를 보내왔다.
내 생일 이틀 전인 12일 아침, 현열이가 우리집 부근의 글렌락 역으로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글렌락은 역이 두 개여서 항상 어느 역인가 혼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현열이와 전화통화를 한 후 어느 역으로 올 것이라는 것을 듣고, 대강 짐작해서 어느 한 역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까 내가 생각한 역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 파킹장 한구석에 긴 기차여행에 찌들린 피로한 모습의 현열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작도 틀렸고 우리가 도착한 곳도 플려서.결국은 잘못된 짐작의 반대인 바른 역에 가게 된 것이다. 이 타운의 두 역은 현열이가 내일 다시 온다고 해도 또 헤메게 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곳이다. 잘못갔는데도 올바르게 일이 진행됐다는 것이 행운을 암시하는 것같기도 했다.
내 생일에다 현열이까지 온다고 해서 우리는 팔리세이드 파크에 있는 정육점에서 아주 양질의 갈비와 불고기 재료를 샀다. 현열이를 픽업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덱에 있는 화덕에 구으니까 금방 고기가 지글지글 타면서 맛가로운 향내와 하얀연기가 집안을 뒤덮었다. 집은 순식간에 잔치 분위기로 변했다. 승연이와 현열이는 암호같은 이상한 말로 생일케이크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교신하는 것 같았고, 나는 두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냥 넘어가 주는 척 했다.
맛있게 익은 뜨끈뜨끈한 고기를 물방울이 살짝 맺혀있는 상추에 놓고 된장과 멸치로 만든 쌈장을 발라 한 입에 넣었다. 가족들의 손이 밥상 위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분위가 막 익어가던 중, 현열이가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혹시 아빠가 친구 딸이나 좋은 여자를 제게 소개해주실지 모르지만, 저는 앞으로 일년간 여자와 사귀지 않으려고 해요."
"현열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면 못 사귀겠지만 어느기간 동안은 안 사귀겠다는 것은 무슨 뜻이니?"
"저는 일년간 결혼과 앞으로 만나게 될 결혼 상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여자와의 만남에 대해서 충분히 정신적으로 준비하고 난 후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와 교제하고 싶어요. 다시 말해서 제가 사귀게 될 여자에게 충분히 그 만남을 준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야, 너 엄마같은 여자만 찾아 봐. (아내를 힐끗 보면서 ㅋㅋ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같은 여자 없어요. 있으면 제가 하죠.(엄마를 의식하면서 말했지만 진심인것 같았다)"
너 엄마가 결혼할 때는 얼마나 멋있었는 줄 아니? 지금도 괜찮지만(조심스럽게 옆을 힐끗보면서) 옛날에는 몸매 죽여줬다.
(현열 ???????, 그러자 아내가 "지금 내가 어때서------" 하고 웃으면서 우리대화에 끼어들었다.)
"현열아, 대학에서 여자 친구 만나지 못하면 사회에 나와선 정말 힘들다. 아마 대학원에 가서도 기회가 있겠지만, 왠만하면 네 주위에 있는 여학생들 중에서 생각해봐라. 옆에 있어서 좋은 줄 모를 뿐이지, 다 괜찮은 아이들이다"
"대학에 있는 동기나 후배 여학생들은 너무 가깝게 지내서 그런지 연애 상대로 보이지가 않아요."
"현열아, 아빠 외할머니의 신조는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살아라." 였어. 그시대에는 길게 생각해보거나 골라서 취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서 였지. 그러한 와중에서도 외할머니는 106세까지 남의 본이 되는 삶을 사셨다." "어떻게 보면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인거야."
그러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현열이 후배 여학생들의 장점에 대해서 몇마디 하다가 다른 토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지금 내 뇌리에는 그가 1년간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정신적으로 충분히 준비한 후 좋은 여자를 만나 교제하겠다는 것이 매우 인상깊게 남았다. 그 말은 내가 1985년 지금 아내를 만날 때, 24살이던 아내가 결혼을 놓고 포코노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아내는 기도원을 내려와 얼마안되서 나를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하나님이 택해주신 상대라는 것을 시아버님이 될 분이 선생님인 것을 통해서 확인하길 원했다. 아내는 학교서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나의 아버님은 학교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나는 아버님에 대해 돈을 잘버는 친구아버님의 비해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본의 아니게 나의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하셨다.
닥치는 대로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말 한 것은 현열이에게 고지식하게 살다가 상대를 놓치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러나 그는 한다면 하고,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아이이다. 주일날 같이 예배를 드리다 보면, 교회가 떠나가도록 통성으로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의 통성기도에 배우자에 대한 바람이 들어갈거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그의 뜻대로 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 현열이의 유펜 졸업식 http://www.youtube.com/watch?v=PPFJmgZrx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