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KASCON 25 at Yale University

박중련 2011. 3. 21. 11:13


                        3/18/11-3/20/11 예일대학에서 있었던 25차 Korean American Students Conference에 유펜 후배들 5명과, 현열(오른 쪽 위),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함께 한 사진 (KASCON 25 웹사이트 http://kasyale.blogspot.com/2010/03/kascon-xxv-at-yale-university.html )


앞으로 2달만 있으면 유펜을 졸업하는 현열이가 지난 주에 후배들 5명과 KASCON 25에 참석하기위해 예일대학으로 가던 중 우리집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두 주전에는 유펜에 있는 교회 동기들 14명이 우리집에 왔었다. 유펜생활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친구와 후배들을 집에 초대해서 그들과 이별을 고하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KASCON은 현열이가 유펜 4년간 공들인 모임이다. 1학년때에는 아틀란타의 에모리대학에 갔었고, 2학년때에는 유펜에서 있었던 대회의 프로그램 메니저로 DC 교육감 미셸 리를 포함한 동포 2세 지도자들을 초청하는데 중추적인 역활을 했다. 3학년때에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의 모임에 갔었고, 4학년인 이번에는 유펜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예일대학에 참석했다. KASCON은 뒤에 붙은 25가 말해주듯 25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행사이다,  KASCON을 거친 선배들이 이 행사가 영원히 지속할 수 있도록 재단을 설립해서 돕기때문에 아마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현열이도 대학 졸업 후 이 재단을 통해서 KASCON을 도울 생각을 갖고있다. 재단 선배들은 현열이의 섬머 인턴 인터뷰도 주선을 해주었는데 대부분이 미국 유수기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집행부의 일원으로 일했던 유펜 KASCON 대회는 미 전역에서 500여 학생들이 참석했고 키노트 스피커나 토론자들도 우리들이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일 정도로 성대했다.  현열이는 집행부와 함께 주말이면 보스턴, 뉴욕 등에 있는 대학에 가서 모임을 홍보 했다. 유펜 KASACON이 있었던 2학년 2학기때 성적이 눈에 띌 정도로 낮았는데 그는 그것을 자랑스런 훈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 예일대회는 유펜대회의 반 정도 인원이 모였고, 페퍼다인 대회는 그보다도 적었다.  매 대회마다 각 대학 학생들이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위의 유펜학생들도 봉고와 기타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집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꽤 수준급이었다고 말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05ioqGxHuLc&feature=player_embedded#at=30  


KASCON 대회는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있는 동포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커리어에 대한 지도를 받는다. 사회의 선배와 대학생 후배들이 서로 넷워킹을 해주는 역활을 해주고 있다. 이미 동포들 중에는 미국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유펜출신 6자회담 미국측대표 성 김 대사를 포함 여러 차관보급 인사들도 있고, 다트머스대학의 김용총장이나 DC 교육감을 지낸 미셸 리와 같은 지명도가 높은 교육가, 신호범 워싱턴 주 상원의원 같은 정치인, 영화인, 음악인 등이있다.  이 모임은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지만 성공한 동포지도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현열이는 유펜 KASCON모임에는 국회의원인 홍정욱씨와 나경원씨가 방문하기도 했다.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준 신호범 와싱턴 주 상원의원은 모임에 참여한 인사들 중에서 가장 바쁘신 분들 중에 한 분이다. 나는 현열이가 유펜모임에서 이분이 기조연설자가 아닌 소규모 세미나 그룹을 리드한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이 이분의 격을 모르고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분은 격같은 것은 마다하지 않고 매년 이 모임에 참여해서 동포학생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미국 정치참여를 돕고있다. 학생들은 그가 6.25전쟁때 구두닦이이었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되면서 정치학 박사가 되었고 워싱턴 주 연방상원의원이 되는 인생역정의 경험담을 들었다. 그가 선거때 유권자를 일일이 방문하면서 신발 수십켤레가 헤어졌다는 일화를 듣고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매 선거때마다 당선되는 그를 보면서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 조건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유펜모임에 온 초트, 하버드학부, 스탠퍼드 법대출신인 홍정욱씨는 집행부의 일원인 아들에게 비즈니스 카드를 건네주면서 한국에 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었다. 현열이가 몇달 후 고대에 교환학생으로 한학기 가 있는 동안 비즈니스 카드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연락했지만 답장이 없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기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웬지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느낌은 부인할 수 없었다.

 

3/20일 일요일 현열이는 우리가족이 다니는 프라미스교회가 있는 후라싱으로 친구들과 함께 내려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근처식당에서 오찬을 하며 격의없는 좋은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머리가 희끝희끝한 내가 1981년에 와튼학부와 1985년에 와튼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는데 놀라는듯 했다. 1년 후배인 조나단의 엄마도 와튼학부를 1986년에 졸업했다고 해서 사진을 보았는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 유펜동포학생들의 다양한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뉴욕시의 특목고인 스타이브슨트고등학교를 나와 리버럴아츠 칼리지인 윌리엄스대학을 1년 다닌 후 편입한 학생, 뉴저지 주 특목고인 버겐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 시카고에서 온 학생, 여학생 두명은 각각 아틀란타와 태국에서 왔다. 태국에서 온 학생은 한국에서 5년전 사업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그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유펜에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상당히 있는데 단 한명도 함께 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살아야하는 학생들과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동포학생과 유학생들과의 유대관계이다. 우리가 유펜에 다녔을때는 한국학생회가 하나이었는데 10년전 쯤 유학생들 위주로 모임이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만나야 가까와 지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동질적 문화배경으로 갖고 있는 학생들끼리 모임으로서 효율적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냥 뭔지 아쉽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필라델피아로 가는 디스카운트 버스인 볼트버스 정거장인 맨해튼 8가와 34가에 데려다 주었다. 앞으로 일할 회사로 부터 signing bonus를 두둑히 받은 현열이에게 충분한 돈이 있지만, 나는 어느때나 마찬가지로 지갑에 있는 지폐를 모두 꺼내 그의 손에 집혀주었다. 우리 부자는 이때마다 "아빠, 저 돈 있어요" "그래도.." "저 있어요" 하면서 또 한 번 부자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현열이의 잊지못할 대학생활 추억을 함께 엮어나가 준 친구나 후배들에게 그들이 필요할 때 편안한 공간과 잠자리,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했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우리가족 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KxXF-zT41VY

현열이의 UPenn 한국학생축제에서 공연(시작할 때 세명 중 오른쪽, 그리고 끝날때 오른쪽) http://www.youtube.com/watch?v=bQy3HdNbpX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