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펜 4학년 마지막 학기 봄방학때 현열이는 유펜의 Grace Community Church 에서 4년간 함께 동고동락한 동기 19명과 함께 카리브안에 있는 자메이카섬 해안에서 1주일간 휴가를 가기로 했다. 그중 여학생 5명은 3월9일 새벽 6시에 Air Jamaica가 떠나는 JFK Terminal 4에서 만나기로 했고, 14명은 떠나기 전날인 일요일에 내차와 교회 밴으로 우리집으로 오기로 되었다. 나는 아침8시반 주일 예배를 마치고 혼자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이들은 주일 오후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 집에서 잠시 눈을붙인 후 새벽 3시반에 JFK로 떠나는 강행군 할 예정이다.
아침 9시 반에 교회를 출발한 나는 혹시 집에 있는 노래방 기계 곡을 빅뱅같은 젊은이들 노래로 업데이트 할 수 있는지 궁급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로 떠나기 전 뉴저지주 동네에 있는 전자점을 찾았으나 주일날에 영업을 안하기때문에 꽉 닫혀있는 가게문을 보고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상황에서 10년이상 된 포드 윈스타 밴의 비실비실 움직이는 와이퍼를 보면서 웬지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어느 누구는 이날의 날씨를 보고 "업치락 뒤치락 하더니...비에 묻혀 봄이 내린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항상 멀티테스크를 즐기는 나는 이날도 가면서 아바가 불렀던 "I HAVE A DREAM"이라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흥겹게 따라부르면서 차를 몰았다. 이노래는 평창의 올림픽설비 심사시 어린아이부터 어른 2018명이 강릉 아이스링크에 모여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곡이다. 차는 어느덧 뉴욕보다는 필라델피아 쪽에 가까이 가 있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뉴저지 턴파이크는 한 번 비가오면 마치 하늘이 개벽하듯이 폭우가 내려서 차안에서는 잠수함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석쪽에 있는 와이퍼가 왼쪽으로 움직이더나 차 앞창문 밖을 벗어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깜짝놀라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와이퍼를 오른쪽에 갖다 놓은 후 시동을 다시 걸어보았으나 이미 와이퍼는 내 실력으로 고칠 수 없는 상태였다.
일요일인 오늘 견인차를 불러도 당일 차를 고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비가 그치기를 바라면서 차가 다니지 않는 갓길로 와이퍼가 아직도 움직이는 오른쪽 좌석의 창문을 보면서 드라이브를 했다. 앞에 차가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별 불편없이 갈 수 있었으나 공사중인 곳에서는 갓길을 벗어나서 다시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다행히 10여분지나서 7번 출구 사인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을 나와서 주변에 정비소가 있는지를 살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에는 정비소들이 쉬는데, 다행히도 얼마 안가서 정비시설이 열려있는 주유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미니칸출신 정비소 주인은 와이퍼 조인트를 분해하더니 와이퍼 막대와 모터를 연결하는 나선형 결이 닳아서 그렇다고 알려주고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개스를 넣어주는 탈리반(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왔음 )같이 험악하게 생긴 친구는 그주인이 이정도는 고칠 수있다며 씩 웃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그는 콜라 깡통같은 것을 크기에 맞게 잘라서 결이 없어 헐렁하게 된 접촉부분에 넣고 너트로 타이트하게 조였다. 그러자 와이퍼는 마치 새것같이 힘차게 움직였다. 억수같이 비오는 날 운전석쪽 와이퍼가 고장이 날 확율, 일요일에 문을 여는 정비소를 만날 확율, 그리고 파트가 없는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깡통껍질을 이용해 고쳐주는 메카닉을 만날 확율은 정말 0.1% 정도 밖에 안된다. 사회에서 무시받는 도미니칸과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이들이 착한 사마리아인 같이 고맙게 느껴졌다. 만일 내가 정시에 이차로 아이들이 기다리는 필라델피아까지 가지 못한다면 그들 휴가를 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약속한 시간에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할 때는 14명 짐을 실은 우리차에 현열이와 나만 탔기때문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중 두가지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하나는, 현열이가 멘토로 여기는 에일대 출신 사회운동가인 선배로 부터 들은 이야기 였다. 그가 누나에게 유명한 법조인을 소개해 주어서 시카고법대 초청해 행사룰 치루게 해줬는데 그의 말로는 누나가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는 도움을 받으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중에 그가 소개한 사람과 행사를 어떻게 마쳤는지와 감사한 마음을 한 번 더전하지 못했다. 그가 약간 섭섭했던지 현열이가 보낸 근황을 알리는 이메일의 답장으로, 잘있다는 말 한마디 후 누나가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못해서 실망스러웠다는 말을 길게 썼다고 한다. 나는 그런말을 해주는 그에게 너무 고마왔다. 현열이도 그의 이메일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을때 확실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예의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지연이도 이 기회를 통해서 한 번 더 그러한 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와 함께 가고있는 교회밴을 운전하는 중국계 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 학생은 4년만에 학부와 대학원석사과정을 거의 4.0으로 마친 수재로 내일 일을 처음 시작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일 시작을 하루 늦추고 봄방학 휴가를 떠나는 동료들을 위해 필라델피아와 뉴욕을 하루에 서너시간만 자고 왕복해야하는 일을 자청했다. 친구를 위해서 고생을 마다하는 그에게 머리가 숙여졌고, 이 아이들이 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자신도 남들에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그가 미친 영향이 단순히 운전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인 14명 중 여학생은 3명 뿐이고, 반이 한국계이고 나머지는 싱가폴, 홍콩, 말레이지아, 부루네이 등에서 온 중국인이었다. 이 중 몇명은 학년을 1-2년씩 뛰어서 대학 졸업반인데도 20살 21살정도로 나이가 어렸고 대부분이 우등생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동할 때마다 원을 그리고 둘러서 손잡고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순수하고 착하며 총기가 있는 아이들이다. 유행가보다는 Gospel 송에 익숙한 것 같았고, 빅뱅과는 거리가 먼것 같았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자신이 다닌 대학 캠퍼스내에 있는 GRACE COVENANT CHURCH에 1년간 십일조를 낸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주로 다니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을 돕기위해 생긴 불문율이다. 똑 소리나는 교회밴 운전한 친구는 나의유펜 재학시절부터 수십번 다닌 나보다 15분이나 일찍 집에 도착했다. 저녁식사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이지만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배가 약간 고픈 상태이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큰 프라스틱 통에 가득 잠겨놓은 소갈비와 불고기감을 들고 덱에 나와 바비큐 그릴에 구웠다. 식사를 시작한 상태에서 굽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 위해 그릴을 최고 온도에 갖다놓았고 고기를 놓을 수 있는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현열이는 2-3분마다 와서 친구들을 위해 고기를 날랐다. 고기 기름이 안경을 뒤덮었고 매운 연기가 코를 자극했지만, 현열이의 "아빠 대박이야"하는 말이 이 불편한 것들을 다 가려줬다.
몇명은 랩탑을 보고, 몇명은 부억에서 설거지와 과일 깍는 일을 돕고, 몇명은 우리의 묵지빠같은 "아싸 아싸"하는 계임을 하고, 재미있게 보내면서 밤 12시 쯤 들어서 모두 잠이 들었다. 아침 2시반에 일어나서 3시반에 JFK로 가야 하고 침대가 모자르기 때문에 원래는 잠을 안자기로 되있었다. 2시쯤 일어나서 보니까 11명은 Living Room 소파와 마루에 벽난로의 따뜻한 공기에 의지해서 지그재그로 누워 자고 있었다. 밴을 운전한 학생은 현열이 방에, 여자 세명은 손님 방에 있었다. 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잘 수 있게 하기위해 최대한 불키는 시간을 늦추었다. 먼저 아침식사 준비를 준비한 후 떠나기 15분 전에야 불을 켰다.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원상태로 갖다 놓으려고 애를 썼고, 아침식사로 준비한 빵과 과일 커피등을 맛있게 먹었다. 서두르는 가운데에서도 모두 둘러서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밴이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길 기원하고, 좋은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고 밴에 올랐다. 새벽 3시반에 JFK로 출발한 우리는 4시 15분쯤에 공항에 도착했다.
친구들 19명이 묵을 자메이카의 휴양 장소는 개인소유의 해변이 있고 요리사가 붙어 있어서 음식걱정을 안해도 되는 좋은 곳이라고 한다. 어제 현열이가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위의 그곳사진을 보내왔다.내가 본 현열이 친구들은 결혼식에서 엑시터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그를 축복을 해줄 인생의 동반자들이다. 현열이는 유펜교회를위해서 프레지를 끝내고 프레터니티를 들어가려고 했던 곳도 이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위해서 포기했다. 진정한 크리스챤의 모습을 이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고 짧은 이 추억이 현열이와 그들의 관계를 더욱가깝게 했으면 하고 바랬다. 손님방에 14명이 작은 땡뀨카드에 빼곡히 적은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자그마한 배려가 그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었다는데 뿌듯했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