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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2장: 엑시터에서의 배커로리어트 예배 -졸업반과 선생님들의 만찬

박중련 2010. 6. 21. 09:34

참고) 엑시터에서는 1주일에 걸쳐 졸업식 행사를 갖는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감명깊은 은사들과의 헤어짐과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나는 학생들에게 힘을 주기위해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스케줄을 갖는다. 이 스케줄은 학교 설립 후 230년간 장단점을 검토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학부모로서 이렇게 감명스러운 졸업식은 처음 대해본다. 이 글은 현열이가 졸업식 주간에 대해서 쓴 글중 2장에 해당된다. 프롬을 마치고 난 다음날 부터 졸업식 전날까지 있었던 행사를 묘사한 것이다. 이 행사중 배커로이어트 예배가 있는데 엑시터 기독학생회장인 그가 개회연설을 했다.


   프롬에서 잊지 못할 밤을 보낸 뒤, 나는 오늘 밤에 있을 행사들을 준비하며 아침부터 낮까지 느긋하게 보냈다. 졸업 주간의 둘째 날 첫 번째 행사는 배커로리어트baccalaureate예배이다. 이 예배는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갖는 종교행사이다. 엑시터 학생들은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 모든 종교가 이 예배에 참여한다. 예를 들면 나의 친구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2년차 12학년 학생은 코란을 원어로 읽었다. 본문을 낭독하는 소리는 부드러운 음색의 노래형태로 큰 성전에 울려 퍼졌고, 나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안내했다. 아름다운 형태의 이국적인 소리를 듣는 것은 나에게 이슬람 신앙을, 오늘날처럼 언론에 의해 격하된 것이 아닌, 순수한 상태에서 맛보게 하였다. 이슬람 본문 낭독에 이어, 유대교 기도도 있고, 힌두교 성국의 묵상과 신약성서 구절의 통독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청중에게 ‘예배로의 초청’이라는 연설을 한 것이다.

   엑시터에 있는 동안 나의 종교적 지주이었던 톰슨 목사님은 배커로리어트 예배가 있기 며칠 전, 내게 ‘개막 초청’ 연설을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예배로의 초청’은 말 그대로 졸업반 예배를 보기 전에 바른 마음가짐을 갖게 하기 위해서 갖는 예식이다. 이것은 졸업생 전체에게 연설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나는 졸업식에서 급우들을 영적으로 준비시키는 것을 돕는 일이 큰 명예라고 생각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천천히 연단위로 올라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치고는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뛰어난 2007년 졸업반 교수진, 직원, 그리고 학생여러분 저는 어젯밤 프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기막히게 좋은 시간을 그리고 그곳에 가지 않은 사람들도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그에 버금가는 시간을 가졌길 바랍니다. 이 아름다운 금요일 저녁에, 필립스 교회 안에 오늘 앉아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배커로리어트 예배가 도대체 무엇인가? 글쎄요, 많은 우리 엑소니안들이 단어나 문장에 대해 질문이 있을 때 마다 하듯이, 저도 나의 친구인 위키피디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배커로리어트 예배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찾았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하는 종교적 색채를 띤 행사로, 졸업반 학생들을 향한 마지막 고별인사가 되며, 미국에서는 설교형태로 행해진다. 배커로리어트 연설들은 보통 1시간 내지 2시간에 걸쳐서 한다.’

   바라 건데 우리의 경우, 두 시간대에서 좋은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 주간, 떠난다는 것과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행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엑시터를 떠난다는 것이 제 인생에 진정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습니다. 나의 우정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나의 추억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어젯밤 프롬이 있은 후,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춤을 춘 저는 제 슬픔의 절정을 경험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지금 더 나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는 열네 살 때로 돌아가 이 나아진 상태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소년의 말은 4년 전에 조심스럽게 타임캡슐에 들어가 있다가, 오늘 다시 나와서 제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제게 보낸 편지에 그는 여러 가지 말을 해 주었습니다만(이 자리와 특별히 관계없는 많은 것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말 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이 여기서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은 당신 옆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분께서 원하시는 길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 안에서 새로운 날에 대한 평안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을 영원히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또는 오게 되든지, 나의 다음 행보를 내딛는데 늘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일요일 정오쯤에 모두 큰 발걸음을 내디딜 겁니다. 우리는 엑시터와 이곳 학장님들, 교수님들, 그리고 친구들의 보호막이 없는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들 중 한 그룹은 인산인해 속에 한 작은 반점에 지나지 않아 보일 큰 도시로 들어갈 것입니다. 또 다른 그룹은 자신들의 독특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도시 느낌이 덜한 곳으로 갈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지금쯤 바로 이 순간에, 우리 삶속에 소위 이 “발걸음들‘이 계속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해를 더하면서, 그 발걸음들은 아마 더 커질 것입니다. 저의 경우, 좋던지 싫던지 간에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가운데서 평안으로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엑시터는 다양한 장소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다가올 행사에서 평안을 찾길 권하며 기도드립니다. 여러분은 지난 해 동안 우리학교에서 실행되어온 여러 종교들의 다양한 구절을 곧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동기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통해서 평화를 찾았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비종교적인 곳에 의지해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알맞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며칠 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 행보를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의 길이, 오늘 배커로리어트 예배에서 더욱 확실해지거나 찾게 되길 기원합니다.


   예배의 절정은 톰슨 목사님의 설교 때 왔다. 300여 쌍의 겁먹고, 흥분하고, 당황하고, 압도되어 미칠 듯이 기뻐하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2007년 졸업반 학생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하려는 목사님에게 향했다. 채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연설을 하기 위해 목사님은 특정 성경구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주로 그의 마음에 있는 원고로 말을 이어 나갔다. 목사님의 설교 단어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의 결론짓는 말씀을 들은 후 받은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예배로의 초대’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졸업식을 기다릴 때 평안을 마음에 포용하는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서야 진정한 평화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왔고, 그 안에서 몰아치는 열망의 폭풍이 진정되었다.

   전례식문이 끝나자 학생들은 ‘졸업반과 선생님들의 만찬’을 위해 엘름 스트리트 학교식당으로 향했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 ‘졸업반과 선생님들의 만찬’은 졸업식 전에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초청해서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는 행사이다.

   이 행사의 대부분은 교제를 나누고 편안히 재미있게 보내는 시간으로 채워지지만, 하이라이트인 선생님 한 분이 만찬에서 연설하는 순서는 우리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그날 밤에는 존경하는 맹간Mr. Mangan 영어 선생님이 연설을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큰 기대를 했다. 맹간 선생님은 연초에 암 진단을 받으셨고 오랜 시간 병가를 내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연설을 시작하자 그분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씀 하나하나에 모두 세심하게 귀를 기울였으며 식당 전체가 조용해졌다.

   맹간 선생님은 엑시터에서 한 ‘전형적인’ 엑소니안의 1년을 돌이켜보는 것으로 연설을 이어가셨다. 시험, 숙제, 발표 사이에서 잊어버릴 수 있는 계절의 미묘함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일요일에 졸업장을 받고 나면, 실제로 무엇을 놓고 가는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주셨다. 그분의 말씀이 내가 엑시터를 곧 떠나게 된다는 사실의 종결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엑시터 문화라는 직물에서 벗어날 수 없게 짜인 내 삶의 엄청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자라고 사랑하게 된 이 장소를 떠나면서 날카롭고 아픈 이별의 고통을 받지 않으려면, 점차적으로 나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했다.

   이 행사가 끝나자 학생들은 졸업식 전 마지막 단체행사인 ‘시니어의 밤’을 준비하기 위해, 입고 있는 양복, 넥타이, 치마를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러 기숙사로 향했다. 시니어 밤은 톰슨 체육관에서 밤9시부터 자정까지 졸업반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즐기는 행사이다. 일주 전에 있었던 졸업반 회의에서 팅그리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2007년 졸업반 시니어 밤은 장애물 코스서부터 가라오케까지 모든 것을 갖고 와서 즐겨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기숙사 친구들과 나, 우리 모두는 체육관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모두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곳에 준비된 “FUN STATIONS"이 처음에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서로의 졸업앨범에 사인하는 데 보냈다.

   나는 친구들의 졸업앨범에 그들과 함께 보낸 특정한 추억을 기억하며 써 내려갔다. 엑시터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이 시간은 엑시터의 생활을 마무리하는 내게 도움을 주었다. 내가 어느 특정한 일이나 서로만 아는 농담에 대해 졸업앨범에 적을 때마다 그 추억이 우리 사이에서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나는 이들과 엑시터 학생으로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이곳에서 형성된 연결고리로 인해 분명히 우리에게 기다려지는 만남이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엑시터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

앤도버의 배커로리에트 예배 장면 http://www.vimeo.com/1318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