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연이는 내 나이 39세, 아내 나이 36세에 난 늦둥이다. 큰 딸 지연이와는 열한 살, 둘째 현열이와는 아홉 살 차이가 난다. 언니와 오빠는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범생이었지만 승연이의 경우는 달랐다. 아이는 네 살 때까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 살 때는 말을 웬만큼 하는 편이었으나, 1주일간 한국에 다녀온 뒤부터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테스트도 받을 수가 없었다. 소아과 의사가 청각테스트와 정신감정을 권해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모두 정상이었다. 한 의사가 자폐증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해서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승연이는 여러 테스트를 통해 언어지체 판정을 받고 카운티의 특수교육부와 연결되었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현실을 인정하고 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승연이가 만 네 살 때 학군산하 특수예비학교에 보냈다.
일반적으로 예비학교는 사립이지만 학군에서는 언어지체를 포함한 학습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자체 예산으로 조기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러한 학생들 중에는 다운증후군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지체장애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언어지체를 갖고 있어서 함께 교육을 받았다. 승연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던 날, 아내는 매우 장애아들 속으로 사라지는 승연이의 뒷모습을 보고 쏟아지는 눈물에 정신없이 복도를 뛰어나왔다고 한다.
장애 사실을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라
한국에서는 장애인 자녀로 인한 진료비 부담 때문에 집안의 정상인 가족들이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지만, 미국에서는 18세까지 학군에서 장애아동의 재활과 교육을 책임진다. 보통 한 학군에 장애아동 숫자가 약 10퍼센트 정도 되는데 이들에 대한 교육예산은 전체의 15-20%퍼센트에 이른다. 그리고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장애인 복지시설을 위해 유산을 남기는 경우도 있어서 지역에 따라 시설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2006년에 타계한 아칸소 주 부지사 윈스롭 폴 록펠러Winthrop Paul Rockefeller는 자녀 7남매 중 여섯째인 존John이 다운증후군이었다. 그는 아들로 인해 그 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후에 같은 장애를 가진 딸 그레이스Grace를 홍콩에서 입양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칸소 리틀록에 '아카데미 엣 리버데일Academy at Riverdale'이라는 최첨단 장애인 교육시설을 설립했다.
미국에서는 어려서 장애를 고쳐주어야 커서 비용을 덜 수 있다는 생각에 장애아들을 위한 시설과 협조체계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막내 승연이를 통해, 그 동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거쳤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이 말은 특수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음을 뜻한다.
학습장애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특수교육은 학군이 속해있는 공립학교나 사립 보딩스쿨에서 받을 수 있다. 피터슨 가이드에 의하면 미국에 약 100개가 넘는 보딩스쿨들이 학습장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존 듀이 아카데미The John Dewey Academy이다. 학비가 학생당 7-8만 달러로 비싸지만, 어떤 경우에는 학군에서 그 비용을 부담하기도 한다. 이 학교에서는 뛰어난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신적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치유하면서 대학진학을 준비시킨다.
이러한 보딩스쿨에서는 정신집중장애, 정서적 또는 행동 문제, 머리는 좋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난독증, 문제아 등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보통 일반 학교 커리큘럼에다 특수교육 부분을 접목시켜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명문 보딩스쿨들은 정신집중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앤도버는 1999년 한 정신집중장애 학생을 성적이 나빠서 퇴학처분을 내려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 소송서류에 의하면 앤도버는 그 학생에게 시험 볼 때 시간도 더 할애하고 필수적인 외국어과목도 수강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소송을 당했다는 것은 이러한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뉴저지 주지사이었던 토마스 케인은 난독증에 말을 더듬었지만 세인트 마크스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들 중에 한 명이 되었다. 마약을 사용하거나 싸움을 일삼는 문제아동들만을 취급하는 보딩스쿨도 있는데 성격상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아를 둔 부모의 마음
승연이처럼 언어지체가 있으면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정신집중장애 증세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 아이들도 있다. 승연이도 한때 정신없이 돌아다녔으나 공부 할 때는 집중했다. 아마 비전형적인 정신집중장애였던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 자라면서 그 증세는 모두 사라졌다.
특수학교에서는 언어지체 장애학생들에게 말을 하게끔 자극을 주는 교육을 한다. 동화를 읽어주고 비데오를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가끔 학부모 참관 시간에 가서 보면 가르치는 내용과 선생님들의 열정이 거의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승연이가 꼭 말을 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승연이의 말문이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형을 가지고 대화를 시키며 자신이 인형 대신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집에서도 그 모습을 재현하려고 인형을 주면서 한참동안 기다린 적도 있다. 얼마가지 않아 식구들에게도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행동도 서서히 없어졌다. 그럼에도 여름방학 동안에는 승연이를 카운티에서 주간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보냈다. 단 일분이라도 정상인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고 싶었다.
노력의 결실로 승연이는 유치원이 끝날 무렵에 제법 긴 문장을 지어서 말을 할 수 되었다. 그러나 문법이 틀리는 경우가 많았고 마치 갓 이민 온 사람처럼 문장이라기보다는 단어들을 연결해서 의사표현을 했다. 특히 불규칙동사나 3인칭 동사의 변형 부분은 자주 틀렸다. 그러던 것이 4학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삶을 생방송하듯 끊임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언어실력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말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디었다. 하루는 공부를 가장 잘하는 급우가 집에 와서 승연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었다. 승연이가 쉬운 문제를 풀지 못해 쩔쩔매자 한심한 표정을 짓는 학생의 모습이 아내의 눈에 띄었다. 아내는 승연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였을 지와 언제 호전될지 모르는 당시 상태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처음으로 공부를 힘들어하는 학생의 학부모 입장이 되어보았고, 공부를 잘하던 큰 딸 지연이와 아들 현열이도 혹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승연이와의 경험을 통해 고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이 사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승연이는 같이 공부하던 장애아들 중에서 회복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다른 부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승연이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심한 상태에 있는 학생의 부모 마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가 크고 적던 간에 부모의 입장에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과정에서 깊은 사랑과 보람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교육을 향한 우리의 발버둥
그동안 우리 부부는 학교 관계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가졌다. 그들은 승연이가 전혀 말을 못하던 상황부터 지켜봤기 때문에, 문법이 틀리게 말하는 것도 장애의 한 맥락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영어를 잘 못하는 한인 이민자들을 모두 장애라고 보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일단 어느 시스템과 연계가 되면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는 완벽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정상아로의 분류를 보류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전국적인 수능시험을 볼 때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이해를 돕기 위해 시험시간을 늘려주거나, 문제를 더 읽어 주기 때문에 학교 평균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특수교육 프로그램의 교육요원 수를 계속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일단 특수 프로그램이 더 이상 자녀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빨리 나와야 한다. 승연이의 경우 본인이 학과 시간에 따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꼈고, 학과 성적도 향상되어서 더 이상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일반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과 후나 방학을 이용해 뒤쳐진 공부를 따라가게 했고 마침내는 4학년 때 특수교육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승연이는 공부를 아주 못했던 1-2학년 시절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문제아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문제아들은 그저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며 남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학생들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릴 적 정신적 상처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을 회복시키려는 부모의 노력과
이 경험이 우리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
우리는 아이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장점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운동도 시켜보고, 악기도 다루게 하고, 그림도 유심히 관찰하였다. 승연이는 말을 못하던 시절 그림으로 생각을 나타냈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감정표현이 항상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승연이의 그림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2007년 5월 8일 승연이는 뉴저지 주 아동 가족국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ies이 주관하는 주내의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참여하는 연례 달력 그림 콘테스트에서 최종 15명 학생 안에 선발되었다. 자신의 그림이 2008년 아동 가족국 달력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승연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것 같아 흐뭇했다. 4학년 말이 되자 승연이는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수학, 영어, 과학 표준시험에서 모두 상급을 받았다. 이 종합점수는 뉴저지 주에서 상위 10% 정도에 해당되는 믿기지 않는 결과이었다.
아직도 나는 승연이가 그림을 다시 그려 그 대회에 출전한다면 또 입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시험들을 다시 본다 해도 모두 상급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주려는 가족들의 기도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승연이는 인간적인 재능에서 남들보다 더디게 발전했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용돈을 모아 교회의 친구들에게 여러 이유를 대면서 선물을 주는 것을 기뻐했다.
승연이는 장애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편견에서 자유스러워지는 축복도 받았다. 어느 날 동네공원에서 한 정박아 소녀가 그네를 타려고 왔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의 특이한 외모 때문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으나 승연이는 그 소녀가 그네 타는 것을 도와주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부부는 막내를 통해 장애아들의 교육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고, 사회의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충격적이면서도 교육적이었다.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재활에 힘써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슴으로 하게 되었다. 승연이가 앞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자라서, 자신이 겪었던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승연이의 첼로 연주 장면http://www.youtube.com/watch?v=_lXeaK9wT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