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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으로 돌아가서 본 현열이의 대학선택

박중련 2010. 1. 28. 12:20

 

                                                                              (유펜 와튼스쿨의 헌츠맨 홀)


날이 어두컴컴해지자 엑시터에서 출발한 3대의 버스가 부모님들이 서성대며 기다리는 뉴욕시 렉싱턴 애비뉴와 42번가 코너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엑시터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며, 12학년인 아들이 대학 합격 후 처음으로 가족과 만나는 날이다. 5시간에 걸친 긴 버스 여행에서 파김치가 된 채 덥수룩한 머리의 현열이가 나타났다. 이럴 때면 나는 늘 그의 키가 얼마나 더 자랐는지 눈대중으로 어림짐작을 해서 평을 해주곤 했다. 우리는 남들이 보는 눈앞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 뒤를 대고 서서 키를 재며, 더 자랐느니 또는 상대방이 발을 살짝 들었느니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늘 하던 키 재는 예식도 달려와 “아빠 저 유펜에 됐어요.”라며 나를 껴안았다. 나도 “축하해’ 하면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약간의 아쉬움 있었다.


현열이는 한 대학에만 지원해서 합격이 되면 꼭 입학해야 하는 수시Early Decision에서 유펜을 선택했다. 유펜University of Pennsylvania이 훌륭한 대학이지만 현열이의 친구들도 그의 성적이나 특별활동 등을 볼 때 그가 유펜에 충분히 입학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수시에서 유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격이 덜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러 대학의 지원을 통해서 그가 어느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볼 수 없었던 것도 우리를 약간 허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시에는 한 대학에만 신청해야하기 때문에 대학 간의 경쟁을 통한 좋은 조건의 학비보조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수시가 기득권층 유리하다고 해서 요즈음은 하버드대학을 포함한 여러 명문대학들이 수시제도를 폐지하는 추세이다.


2007년 엑시터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에 모두 35명이 진학했다. 예년 통계를 감안하면 320명 졸업생 중에 아마도 최소한 150여명 내지 200명 이상이 원서를 냈을 것이다. 아들은 졸업식 며칠 전 전화 도중에 졸업성적 20퍼센트를 선발하는 쿰 라우데 소사이어티Cum Laude Society에 간발의 차이로 들어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현열이도 하버드대학을 포함한 여러 명문대학들로부터 입학원서 제출을 권유하는 편지받았지만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대학선택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


현열이는 12학년에 들어와서 그동안 들어왔던 스페인어를 수강하지 않음으로서 4년간 외국어 수강을 요구하는 하버드대학에 입학원서를 낼 자격조건을 스스로 포기했다. 아마 하버드의 환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프린스턴은 뛰어난 대학이지만 다소 배타적인 이미지 때문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두 시간거리에 있는 그곳을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 밖의 대학들 중에 할아버지가 코네티컷 주에서 사시면서 동경해 오던 예일대학도 고려했지만, 그는 단호히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유펜이 명문종합대학으로 어느 아이비리그보다 코스선택이 다양하며 복수전공제가 잘되어 있고, 그곳에서 크리스천 생활을 활발히 할 수 있고, 시골 엑시터와는 달리 문화와 교육의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도시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교라는 것도 그의 마음을 끌리게 했다. 동문자녀로서 받을 수 있는 레가시 혜택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거짓말 일 것이다.


아들은 유펜에서 동아시아학과 재정학을 복수전공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생각을 실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버드대학에 버금가는 헌츠맨 프로그램Huntsman Program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 외로는 와튼스쿨이나 문리대에 입학해서 상대相對 단과대학에 복수학위를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그는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헌츠맨 프로그램에 지원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가, 입학원서를 제출하는 마지막 날, 세 방법 중 경쟁률이 낮은 유펜 문리대를 선택하였다. 대학 일반전형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는 꿈을 크게 가졌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표에 접근해 가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저는 아빠가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꼭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지난 가을 유펜 문리대 수시에 지원했을 때, 저는 그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유펜에 입학할 가장 좋은 조건에 있었고, 목표를 더 높여 잡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빠의 조언과는 달리, 저는 비교적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 친구들이 대학으로부터 입학통지서를 받는 것을 보면서, 제 스스로 목표를 낮추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의 능력이 못 미치는 학생들마저도 최고 일류대학이나 일류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저보다 더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과 달리, 저는 제 자신을 극한상황에 처해 놓거나, 큰 꿈을 향해서 가는 용기가 부족했었습니다. 저는 움츠린 상태에서 안전한 곳에 안주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러한 소극적인 자세가 제 삶 다른 곳에도 스며들지 않았는지 염려됩니다. 저는 무언가 할 수 있는 확률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포기했지만, 아빠는 몸소 불가능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아빠에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큰 꿈을 갖고 제 삶을 이끌어 나갈 것 입니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생각이 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 약속을 했어야 했던 아들 현열이로부터


 이일이 있은 후 현열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아빠와 의논을 했으며 나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현열이는 유펜 문리대에서 1학년을 마치고 와튼학부와 문리대의 복수학위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합격했다.


존경하는 아버지가 다닌 대학


그는 뉴욕의 어느 동포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펜에 대해 “존경하는 아버지가 나온 대학”이라고 표현했다. 점점 성숙해 가는 현열이가 나이도 들어가고 기억력도 쇠퇴해 가는 초라한 아빠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고 약간의 부담이 되었다.현열이가 졸업식을 마친 첫째 주 일요일 오후, 둘이 교회에서 집으로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아들은 대뜸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나는 무언가 아주 특출하게 잘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니?”라고 받아넘겼다. 그러자 그는 “아빠, 저를 또 나무라시는 거에요?”라고 했다. 나는 아들이 죽도록 도전하는 본능killer instinct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농구나 축구를 할 때도 그에게서 슈팅을 하루에 천여 번씩 쏘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시간도 그렇게 할 의욕도 없었다. 사실 아들처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면 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대화를 하다가 결국 상대방에게 실망만 하고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그럼 아빠는 왜 더 노력을 안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빠도 잠재력이 많은데 노력이 부족한 것 같이 보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는 이제 늙었고 기억력도 쇠퇴해서...”라고 하면서 말을 흐렸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아빠는 늙지도 않았고, 기억력도 좋아요.” 그리고는 “아빠가 그러시면 어떡해요. 나는 아빠를 우러러 보며 사는데....” 우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서로 다른 데를 보며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아마 현열이도 그때 나와 같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무언의 결심을 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대학입시 준비과정


그렇다면 현열이가 어떻게 대학입시를 준비했는지 알아보자. 대학입학사정관들의 말을 빌리자면 대학은 학생들이 얼마나 어려운 과목들을 택해서 어떠한 성적을 올렸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그것들이 입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정도다. 쉬운 과목들을 택하면 자신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잃게 된다. 어떤 학생은 쉬운 과목들을 택해서 성적관리를 잘했지만 지원한 대학에서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현열이는 10학년 때 고전물리Classical Physics에서 고생하면서 그 과목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들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그가 택한 과목들의 힘든 정도는 중상(中上)내지 상(上)이었고 그의 성적은 톱 25퍼센트 정도 되었다. 엑시터는 본인들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어떻게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보기 때문에 공립학교들과 같이 코스의 힘든 정도를 차별화해서 성적에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40퍼센트는 수능점수, 특별활동, 에세이, 추천서,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본다고 한다. 현열이는 11학년 때 보는 PSAT점수가 240점 만점에 222점, 11학년 봄에 단 한 번 치른 SAT점수는 2400점 만점에 2270점이었다. 그는 자기 나이부문에서 뉴햄프셔 주 축구대표팀에 속했었고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 축구 토너맨트에서 2005년에 준우승, 2006년에 4강에 오른 엑시터 축구팀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리고 엑시터 육상팀에서는 원반던지기 대표선수로 뛰었다.


그는 학교에서 에세이를 비교적 잘 쓰는 편에 속했고, 그동안 선생님들이 성적표에 써준 코멘트를 볼 때 아주 훌륭한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커뮤니티 서비스와 특별활동도 순수한 열정을 갖고 매우 열심히 했다. 그는 엑시터 크리스천 클럽 공동회장, LiNK 뉴햄프셔 주 지회 창립자겸 공동회장, 빅 시브 리틀 시브 공동회장, 엑시터 커뮤니티 서비스를 관장하는 ESSO의 8명 커미티 멤버 중 하나로 활동했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 온듀랴스, 케냐, 탄자니아 등지에서 의미 있는 선교활동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했다.

   

이러한 자격조건들과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그는 유펜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아마도 그는 주변의 공립학교나 특목고를 다녔어도 그 대학에 합격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뭐 하러 엑시터에 갔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는 유펜 신입생 2400명 중 한 명 이고 SAT 점수 2270점을 받은 수많은 학생들 중에 한 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통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장점들을 엑시터에서 기를 수 있었다. 남을 배려하는 ‘나를 위하지 않는’ 마음, 하크네스 테이블 교육을 통해서 길러 온 토론능력, 세심하고 효과적인 지도로 발달된 영작능력, 어떠한 힘든 문제라도 풀어 나갈 수 있는 창의력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한 상태로 그리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더 크게는 엑시터 교육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꾸어 놓았을 거라고 믿는다.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