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장하성 고려대학 경영대학장

박중련 2009. 10. 19. 10:19


지난 주에 장하성 고려대학장에게 그곳에 교환학생으로 있는 아들 현열이의 학부형의 입장에서 현열이가 학장님에게 자신을소개하고 그분이 하시는 참여연대와 장하성 펀드에 대해서 알수있는 기회를 부탁드렸다. e-mail을 보낸지 몇일 후에 현열이와 나에게 e-mail이 도착했다. 현열이에게 이번 주 어느 시간에 학장실로 언제 찾아오라는 것과 고대와 유펜의 유대관계 그리고 고대가 동포학생들에게 한국을 배울 수 있는 학문적 창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분은1980년 중반에 유펜 와튼의 재정학 박사과정에 나는 MBA과정에 있었으나 나를 잘 기억못할 정도로 나와는 교류가 없었다. 현열이가 만나는 분들의 초상화를 스케치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 분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 대강 윤곽을 잡고 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뉴욕의 저희교회를 방문한 전 연세대학 신학대학장  김중기 목사님의 "감동"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그 분은 목사는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직업인은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의 설교를 듣고 내가 나의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고, 그리고 부자간의 관계에 있어서 아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또 내가 쓴 책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돌아와 장하성 학장의 스케치를 완성해 가면서 어떻게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에 그가 참여연대와 장하성 펀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갔을 까 생각해 보았다. 그가 현열이에게도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났다.

 

장하성 학장이 하는 일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구글을 살펴보았다.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참여연대의 경제개혁센터는 IMF 당시 개미의 힘으로 재벌을 개혁한다는 기치하에 출범 기업의 투명성확보를 목표로 지배구조 개선및 재벌개혁운동을 전개해 왔다. 즉 경제위기는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와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일삼은 재벌의 지배구조체제에 기인하기때문에 이를 개혁하자는 것이 핵심목표라는 것이다. 장하성 펀드는 그의 일원으로 "기업지배구조"펀드로 국내기업의 지배구조뿐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의 잘못된 투자관행을 바로잡고 "장기투자가치"의 효시를 마련한다는 꿈을 갖고 태어났다. (머니투데이 2008.10.21) "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와튼 MBA과정을 다니던 1983-1985으로 돌아가 보았다. 유펜은 경영학, 경제학, 재정학등에서 세계적인 대학이었기에 그러한 학문에 큰 뜻을 품은 한국유학생들이 많았다. 정부에서 유학을 보낸 현역 사무관들도 있었고 재벌집 자녀들도 있었다. 와튼 MBA 과정에는 홍석주 전 KIC 사장, 김신배 전 SKT사장, 구본걸 LG패션 사장, 안용찬 애경산업 사장 등을 포함해 한 학년에 10여명씩 있었다. 그래서 MBA 과정 2년을 합하면 약 25명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와튼의 박사과정에는 1년차부터 여러해 년차까지 합하면 아마도 우리 정도 만큼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박사과정 큐비클을 지나려면 언제나 한국어 대화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학부학생들이 시험을 볼때는 유학생 출신 TA들이 시험을 관리하곤 했다. 당시 MBA와 박사 과정에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한국경제의 핵심역활을 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경제부처의 핵심 결정권자로, 학문에 꿈을 둔 사람들은 지금 장하성 학장과 같이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MBA과정은 그때와 같이 어느정도 한국학생들이 있지만 와튼박사과정에는 한국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와튼 박사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친구의 말을 빌리면 와튼 박사 선배인 자기들이 "개판을 쳤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했는데, 다시말해서 세계 경제학계에 기여도가 적어서 라는 의견이었다.  


장하성 학장은 경기고와 고려대학을 졸업했는데 당시 한국 와튼유학생들의 70%정도가 경기고출신이었지만 고려대출신은 극소수 이었기에 그의 학력은 매우 독특했다. 그리고 당시는 살벌한 군사정권시기였기에 유학생들 중에는 정부에  반대하는사람들도 꽤 있었다. 당시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러한 부류로 생각되는데, 그분도 소명의식을 갖고 꾸준히 학업에 매진하는 분같이 보였다.  특히 그분의 매서운 눈매와 과묵한 성격은 내게 그런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그분이 나중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여러 주총에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서 그러한 회사들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 모습이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값진 경험이었다. 소액주주들의 권리소송이 재판에 올라가서도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외로운 투쟁이 더욱 돋보였다. 나는 현열이에게 참여연대를 이끈 이분과 박원순 변호사가 한국의 Ralph Nader같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현열이에게 이러한 분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용기를 갖고 기지를 발휘해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가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가 고려대학과 인연을 맺은 만큼 앞으로 미국에서 고대를 사랑하고 학교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장하성 학장님의 추천으로 현열이는 고대경영대 Brochure에 사진 모델로 나와 인터뷰도 했고, 고대 경영신문에 와튼과 고대에 다른 점에 대해서 기고도 했다. 현열이도 고대 Academic Community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열이는 학장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현열이는 장하성 학장과 만난 후 "I had a great time meeting him."라는 내용의 email을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현열이는 유펜에 돌아와서 고대를 대표하는 해외교환프로그램 대사역을 자청했고 이듬해에 5명의 유펜 와튼학생들이 고대에 교환학생으로 가는데 기여했다. 그의 노력으로 고대경영대는 하루 아침에 와튼 교환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좋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http://sa.oip.upenn.edu/index.cfm?FuseAction=Announcements.Announcement&Announcement_ID=2#alpak


현열이와 아빠가 공저한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없이 떠나라."  http://www.youtube.com/watch?v=Skw6Nv8p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