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스케치한 자화상과 현열이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8년전 쯤 뉴저지 주와 펜실베니아주가 만나는 델라웨워강변에 있는 한 축구장에서 아들 현열이가 속해있는 뉴저지 주 U14(14살미만) 대표팀과 펜실베니아 주 동부 U14 대표팀이 경기를 하는 중이 었다. 현열이팀이 페널티 킥을 얻자 코치로부터 수비수이었던 그에게 페널티 킥을 차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바싹 긴장을 하고 페널티 구역으로 걸어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들어가는 소같이 애처로와 보였다. 슈팅연습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페넬티 구역에서 힘차게 찬 축구공은 그 넓은 골대를 훨씬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머리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그를 향해 코치는 '앨버트 머리들어' 하면서 격려의 한마디를 던졌다.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연습을 열심히 하고 기회가 오면 뭔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현열이의 사커뎃(Soccer Dad)역활을 10여년 하면서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그의 성격 형성과정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연습이 부족하면 더하면 되지만, 실패할까봐 슛쏘는 것을 피하는 소극적인 마음가짐은 바꾸기가 쉽지않다. 그의 중학교 농구장 벽에는 "슛을 쏘면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쏘지 않으면 영원히 안들어 간다."란 글이 세겨진 포스터가 붙어있다. 나는 현열이와 그곳을 지날때 마다 멈칫거리며, 그가 그 글을 음미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랬다.우리들은 실패할 확률과 그것이 주는 힘든 결과만을 생각하고 도전을 회피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과감하게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전해 꿈을 이뤘다. 필립스 엑시터의 성공한 졸업생들은 학교신문이나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꼭 학생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라"는 말을 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해서 이러한 인터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현열이는 초등학교 다닐때 매년 자기 학년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매번 낙선을 했는데도 동키호테와 같이 선거 며칠 전에 연설을 연습하며 포스터를 만들었다. 낙선의 고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이 급우들을 위해서 지도적위치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모르는 사람을 보면 '나는 어디 사는 앨버트인데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베이스볼카드와 포케몬카드를 모으던 시절에는, 집앞에 붐박스와 판매대를 설치해 놓고 지나가는 아이들과 카드를 교환하곤 했다. 그때 내가 보기엔 그가 손해보는 것 같았는데, 딜이 끝나면 늘 기뻐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각 카드의 값어치를 파악했기때문에, 상대방을 만족시키면서 자신도 이익을 보는 딜을 했다. 어린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커서 어떠한 일을 할까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자세는 중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갖게되면서 서서히 허물어졌다. 중학교에서 쿨한 학생이 되려면 학생의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야한다. 현열이는 그와 정반대 생활을 했기때문에 그러한 학생들의 목표물이 되었다. 그는 그 고통을 인내해 가면서 그로인해 부모가 받는 고통까지도 이해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어적인 정신자세는 그를 기회가 와도 잡지않는 소극적인 학생으로 만들었다. 그는 최근에도 현재 자신은 어렸을때보다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나에게 고백한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을 바꿔주기위해 중학교 친구들이 대거 진학하는 공립고등학교 대신, 인성교육을 중요시하는 필립스 엑시터를 권했다. 엑시터는 개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곳이다. 그곳에는 뛰어난 음악가, 수필가, 화가, 운동선수, 사회운동가, 종교인, 정치인이 될 자질이 있는 학생들이 서로 어우러져 생활하면서 리더쉽을 배우고있다. 현재 미국사회에서 이단자 취급받는 동성애자들이나 이교도로 여기는 회교신자들도 여기서는 똑같은 인격체로 존경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현열이는 이곳에서 자신이 어려서 갖고 있었던 긍정적인 자세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Christian Fellowship, Big Sib Little Sib, Liberty in North Korea(LiNK)에서 회장을 지내며 조직을 이끌어갔다. 현열이의 이러한 변신을 보면서 나는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엑시터 외에도 그에게 리더가 될 수 있게 도와준 단체가 있다. 이글장학재단(Eagle Foundation)이란 곳인데 이 재단의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낫고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쓰게 가르치고 있다. 매년 7-8명정도를 선발하는데 그 단체의 장학생이 되면 선배로 부터 멘토링을 받아야하고, 후배를 멘토링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재단에 알리고 그 목표의 진행과정을 평가 받는다. 예를들면 1학년때는 조직에 가입하고, 2학년때에는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고, 3학년때에는 조직의 한 부분을 맡고, 4학년때에는 회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시간 이상의 사회봉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장학금 받는것과 결부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이 재단에 속한 학생들은 대학교 4학년이 되면 학업이나 특별활동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도달한다. 이 재단은 이번 오바마 캠페인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레이크(Michael Blake)를 배출했는데 그도 노스웨스턴대학 4학년때 학생회장에 도전했었다.
2009년 유펜에서 있었던 KASCON 23의 지도부 학생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현열
현열이는 2007년 엑시터를 졸업하고 유펜에 입학하면서 의미있는 도전을 시도했다. 신입생 2400명 중에서 8명 대학생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 나가서 세번째로 많은 득표를 하였다. 대학 2학년때는 재선에 성공했고 Student Life Committee Chairman이 되었다. 그러면서 유펜 학생회를 움직이는 선배와 동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유펜총학생회장인 중국계 미국인선배는 현열이에게 저학년때 자신의 노력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2009년 유펜에서 있었던 동포대학생들의 미국대학생회의인 KASCON 23에서도 프로그램 디렉터로 많은 시간과 정열을 그곳에 쏟았다. 그는 회의에 참석하는 키노트 스피커와 페널리스트들을 섭외하면서, 미국주류사회에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다. 그외에도 미 전국에서 500여명이 모여 2박3일동안 하는 회의를 기획하고, 마케팅하고, 재정후원을 받는 것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 여러사람의 권익을 위해서 일할 때 느끼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한정된 시간에 여러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수 있었다. 이제 20살인 그는 앞으로 수없이 많은 도전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자기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키우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에 어렸을때의 동키호테의 모습으로 과감히 도전하길 바란다.
6-22-09
박중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