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터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졸업식 전 행사가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엑시터를 곧 떠난다는 현실이 나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엑시터에서는 전통적으로 졸업식 전날 밤에 친한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다. 그날 밤, 이월드Ewald 기숙사의 친한 친구 5명과 그들 가족은 남부 뉴햄프셔 지역에 있는 본타Bonta라는 식당에 모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모인 사람들이 초면이어서 다소 어색했다. 그러나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몇 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그러한 느낌은 금방 바뀌었다.
친구들은 부모님, 조부모님, 형제자매, 가족 친지 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일요일에 있을 졸업식에 초대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이러한 분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2개의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나와 친구들은 그 중 한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았다. 각 좌석 앞에는 ‘축하합니다. 이월드 2007년 졸업생’라고 쓴 특별한 메뉴가 놓여 있었다. 그 밑에는 맛좋은 앙트레와 송아지 고기, 소의 두꺼운 등심살, 농성어가 쓰여 있었다. 이러한 음식들은 아주 생소해서 내가 주문할 차례가 되었을 때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 고심 끝에 나는 농성어를 골랐다. 주문이 거의 끝나가자, 테이블에서는 대화의 싹이 텄고 방안의 소리는 점점 커졌다. 친구들과 나는 식사 테이블에서 늘 하던 대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우리 외에는 대화의 흐름이 자유롭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신경이 쓰였다. 우리 부모님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리 사교적인 분들이 아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부모님이 가장 마지막에 대화에 끼어드는 모습을 보자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대처할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쪽을 살며시 쳐다보았다. 방 건너 쪽에, 친구 부모님과 담소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부모님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들은 친구 부모님의 옅은 브라운과 블론드 머리, 그리고 그들의 파란 눈과 뚜렷이 대조되었다. 그 외적인 차이를 넘어서, 한국에서 온 이민자인 나의 부모님과 미국에서 태어나서 뉴햄프셔 주에 거주하는 친구 부모님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친구 부모님이 말할 때 친절한 미소와 머리를 끄덕이며 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뛰는 가슴은 다소 안정되었다. 아빠도 거의 비슷하게 행동했지만 주로 말로만 답하려고 하였다. 그분들의 대화가 비록 나에게 섣부르게 보였어도, 결국에는 그것의 진가를 인정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부모님과 친구의 부모님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모두 다 자신의 아들을 다른 사람들의 귀중한 친구가 되게끔 성장시켰다. 그분들의 대화가 그날 밤 내내 지속되면서 이 유대관계가 그들의 물리적이거나 문화적인 차이점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임이 끝나자, 학생들을 위해 두 번의 건배와 학생들의 몇 마디 답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기숙사에 준비된 후식을 먹기 위해, 더욱 중요하게도 엑시터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기숙사로 향했다. 우리 중 몇 명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다른 친구들은 기숙사에 남았다. 우리가 어떻게 보냈든 그 날은 엑시터 학생으로서 만끽한 마지막 밤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