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열이가 고려대학에서 돌아와서 UPenn에 돌아가기 까지(12/23/09-1/12/10)
한국에서 돌아온 현열이는 여동생 승연(7학년)이를 돌보며 유펜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아빠에게 고대에서 한국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했었다고 내게 고마워했다. 그의 대학생활중 4구당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당구장을 찾았다. 가는 도중에 그는 왜 한국은 4구당구를, 미국에서는 포켓볼을 치는 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나는 아마 일제시대때 유럽에서 유행하던 4구당구가 들어와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한 네볼을 가지고 머리를 써서 당구를 즐기는 한국민의 우수성에 감탄한 듯했다. 나는 고등학교때 학교 근처에서 미니당구를 몇번 친 것이 고작이었기에 당구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 당구장에 함께 간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대로 고구마 장사가 끼는 장갑을 카운터에 요구해서 한손에 끼고는 제법 이론적으로 꿰뚫은 것 같은 말을 내내 했다. 나에게 왼쪽으로 스핀을해서 어떤 방향으로 치면 몇 번 쿠션을 해서 빨간 볼 두개를 친다는 논리를 말하는데, 그의 논리적 당구나 나의 육감적 당구의 수준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약 1시간 정도를 치고 당구장을 나왔다.
우리부부는 1월4일부터 8일까지는 양정 58회 선배들과 함께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멕시코로 크루즈가기로 되어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승연이를 혼자두고 갈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현열이가 동생을 돌보겠다고 해서 가능했+다. 크루즈는 4박5일로 한 명 당 비행기가격과 배값, 행선지에 내려서 여행하는 값, 모두 합해 1천달러 정도 되었다. 다른 집은 모두 대학생들이고 방학 중 이어서 부모님과 동행했지만 우리는 승연이 때문에 방학 중이던 현열이도 갈 수 없었다.
멕시코 크루즈 여행 영상은 내가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현열이로부터 배운기술로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릴 수 있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NXlBFVKg3wc
현열이가 기숙사에 가지고 갈 물건들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선물로 받은 아이팟 나노를 백화점에 반환하고 $150 크레딧을 받아 샤핑을 시작했는데, 물 2 박스, 게토레이 1박스, 커피머신, 빨랫비누 등을 쇼핑카트에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는 조그마한 나노로 이만한 물건들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우리가 쓰는 IT물건들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는 기숙사에 가서도 친구들에게 이 말을 반복했는데, 그에게 이 경험은 충격적인 듯 했다.
지금 나는 현열이를 유펜에 데려다놓고 돌아와서 블로그를 쓰고있다. 우리는 2시간 반동안 유펜으로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현열이에게 운전을 맡겼는데 그에게 처음 장거리 운전이었고 학교가는 길도 읽히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학교가는 것과 같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앞으로의 포부와 대학과 대학원 프랜,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Wife상, 앞으로 자식을 나면 어떻게 기르고 싶다는 이야기 등과 그동안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유펜에 밤 8시쯤 도착해서는 친구들을 불러내 산더미 같은 짐을 옮기고 난 후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한국에 보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내게 밝혔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번 학기엔 그가 어떻게 나를 놀라게 할까 생각하며 쏟아지는 잠을 무릅쓰고 차를 집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사무실에 어느 분이 찾아오셔서 자식들 기른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아들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와 시카고에서 MBA를 받았지만 자기는 필립스 엑시터라는 학교를 몰랐기때문에 그곳에 아들을 보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현열이가 며칠전에 동네중학교 동창들이 Facebook에 친구로 들어오면서 그들의 현 상황들을 알 수 있었는데 엑시터에서 만났던 친구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데 놀랐다고 했다. 엑시터 동기동창들 300명 중에서 1/3 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했고 다른 1/3은 그외 명문대학 등등 인데 중학교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동네의 William Paterson, Ramapo, Rutgers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동네 고등학교에 남았다면 괭장히 이기적인 학생으로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을 가졌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엑시터에서 '나를 위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도움을 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 나는 어려서 그의 축구재능을 감지하고 좋은 캠프와 팀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축구기술은 일취월장해서 후에 뉴저지 주 유소년 대표팀에 뽑힐 수 있었다.
- 나는 그에게 보딩스쿨을 보여주고, 그로 하여금 그러한 학교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는 필립스 엑시터를 방문하고 나서는 그곳에서 고등학교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나는 그에게 여러나라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교회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온듀라스에서 1달, 케냐와 탄자니아 2주, 그리고 축구캠프를 위해 볼리비아에서 1달을 보냈다.
그는 프린스턴대학 중국어 프로그램을 베이징에서 3달, 선교를 위해 연변에서 2달, 그리고 한국의 고려대학에서 1학기(4개월)를 보냈다. 그는 정신적 성장발육이 예민한 시기에 1년이상을 해외에서 지내며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 나는 그에게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를 배우도록 조언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한국어를 거의 우리수준으로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Spanish를 배웠기에 중남미 선교지 가서도 웬만큼 대화를 할 수 있다. 가장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그가 대학가서 처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현재 대학 4년차 중국어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국어는 대학원가서도 계속하겠다고 한다. 언어는 인간관계에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아마도 그의 언어구사력이 그가 앞으로 할 여러가지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고 확신한다.
-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정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날수 있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사람들이 보기에 상당히 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현열이가 지도자들을 대하며 그들이 주는 느낌을 소화하며 지적인 교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도했다. 만난 분들 중 반이상은 현열이를 두 번이상 만나 보고 싶어하셨다. 두 분은 너무 대견해서 아들같이 대해주셨다. 만나신 분들은 대개가 그의 인간 됨됨이에 대한 평을 주셨다. 세아상역의 김웅기 회장은, "맑고 순수했습니다," 장하성 고려경영대학장은 "똑똑하고 성숙합니다. 잘 키우셨습니다." 김정원 세종대학 석좌교수는 "바르게 자라주어서 흐믓했습니다."라고 평해 주었다.
- 나는 그에게 여러 장학기관에 장학금을 신청하는 정보를 알려주고, 신청하게끔 도와주었다.
그는 수많은 장학기관으로부터 장학금과 그 외에 혜택을 받고있다. 특히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이글장학재단과 연결된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 나는 유펜에서의 경험을 그에게 알려주고 그가 알차고 멋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었다.
그는 유펜에서 와튼 학부에서는 재정학 그리고 문리과대학에서는 동아시아학 Dual Degree를 공부하고 있다.
- 나(우리 부부)는 그를 기독교 신앙인으로 자라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매일 Quiet Time을 갖고 성경구절을 읽으며 명상의 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한 일은 필요할 때 말 한마디 던진것이었고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냥 아들에 대한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힘들었던 것은 조언이 중복되면 강조가 될 수도 있고 잔소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철이들어가면서 그는 그것을 전자로 여겨 주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자세가 되어있고, 그 것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몰라서 조언을 해주지 못해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