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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직장을 향한 힘찬 발걸음

박중련 2010. 4. 2. 11:10


3월26일(금)

오늘은 현열이가 뉴욕으로 여름인턴사원 취직때문에 인터뷰 하러 오는 날이다.  아침에 Insurance 과목 중간고사가 있었는데 시험보기 며칠 전부터 힘들어했으며 전화 목소리는 완전히 꼬리내린 진도개와 같았다. 그가 엑시터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물리과목을 들었을 때와 흡사했다. 나는 그가 힘든과목을 들으며 고생하는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 과목을 들어야 진짜 공부하는 고통과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내가 와튼학부를 다닐때 나에게는 모든 과목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나도 Intermediate Accounting 과목 중간고사에서 시험문제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땀이 안경을 덮었고 쑥스럽지만 바지에 지도를 그렸던 기억도 있다. 그때 모든 학생들이 나와같은 경험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난 교실은 마치 폭탄이 하나 투하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어떤 힘든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도 월스트릿에서 각광받고 강연비가 1회에 10만달러에 달하는 제레미 시겔(Jeremy Siegel)교수의 재정학코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어를 잘하는 와튼학생들인데도 강의의 중요성 때문에 강대상에는 기자회견장같이 녹음기가 10여대 놓여있었다.  그는 질문을 하나 던지고는 어린 학부학생들의 때묻지 않은 의견을 듣기 좋아했다. 내가 30년전에 들은 코스인데 현열이는 그 교수님강의를 선뜻 엄두를 못낸다. 

   그는 아침에 중간고사을 보고 필라델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와서 미국의 Top 5 급에 드는 어느 Financial Consulting회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있다.


지난 여름 현열이는 인턴사원 인터뷰를 위해서 감청색과 쥐색 양복을 2개 구입했다. 지금까지 계속 감청색 양복 만을 입고 2-3번 인터뷰를 했었는데 모두 보기좋게 떨어졌다. 그래서 좀 께름직스러워했던 양복인데 오늘 또 입게 되어서 약간 걱정인 눈치이다. 컨설팅회사 인터뷰에서는 케이스 질문을 던지는데 원하는 답을 주기가 만만치 않다. 물론 요즈음 job 사정도 좋지않아서 대학의 취업상담소를 통한 인터뷰 할 기회가 줄어든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다.


현열이는 유펜와튼 3학년이며 학업성적은 약 top 10-15% 정도 된다. 그리고 대학생의회 활동도 활발히 하며 가만히 앉아 공부만하는 성격이 아니다. 키는 180cm 이지만 자기 키보다 더 커 보이는 몸매와 역삼각형에다 6 팩도 갖고 있다. 영어도 아빠가 와튼에서 인터뷰할때 보다 100배는 잘하는데 왜 여름 직장이 이렇게 힘들까? 그답은 나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와튼 3학년때 여름직장을 구하기 위해 50개 회사에다 편지를 띄었다. 그 중 한 회사, 코닥만이 오라고 했는데, 그 곳에서 내가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것을 알핬다. 나를 거부한 49개 회사가 코닥보다 나은 회사일는 절대 아니다, 결국 어는 수준이상되면 그 후부터는 운이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난 학기에 본교에 있지 않고 고대에 다녀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작이 늦은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친구들은 이미 2월 경에 결과를 알았다.


현열이는 일차적으로 대학 취업상담소를 통해서 알아보고 있으며, 그외로는 자기가 그동안 쌓아온 넷 워킹 채널을 통해서 시도하고 있다. 그가 작년에 유펜에서 있었던 KASCON의 Programming Manager를 하면서 KASCON의 10-20년 이상 선배들과 연락을 하고 지냈었는데 그들중 한분이 현열이의 여름 직장을 구하는데 발벗고 나섰다. 그분은 현열이 이력서를 메릴린치 글로벌 마켓 2인자 인 분에게 보내주었다. 그래서 오기 몇일 전에 메릴린치의 세일즈와 트래이딩 데스크와도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높은 분으로 부터 지시를 받아서 그런지 인터뷰하는 사람이 매우 friendly 했다고 한다. 그를 아는 2-3년 이상된 선배들도 현열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돕고 있다. 그는 생각치 못했던 커뮤니티 서비스나 학교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나는 뉴욕시의 기차역인 Penn 스테이션에서 그를 만나서 인근 한인타운내의 식당인 강서회관으로 향했다. 음식냄새를 조금 덜 풍기는 스시를 먹기로 했다. 현열이가 앉은 자리는 나의 아버님이 생존해 계셨을때 맨해튼에 오시면 일본유학생활을 기억하시면서 맛있게 드셨던 곳이다. 이제 대를 걸러 내가 그와 함께 앉았다.  스시맨에게 거의 스시값 만큼의 팁을 주고 오늘 아들과 함께 왔는데 아주 싱싱하고 맛있는 것으로 특별히 부탁했다. 우리는 인터뷰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있을 케이스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논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이 기대하는 답을 줄 수 없으면 모르는 것은 솔직히 말하고 그때 유머를 섞으면 어색한 분위기를 깰 수 있을거라고 조언했다. 나는 그에게 엑시터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회사 영앤 루비캄(YOUNG AND RUBICAM)의 최고경영자가 된  PETER GEORGESCU가 젋었을 때 성실한 모습으로 세일즈를 해서 그러한 자세에 익숙하지 못한 상대방이 잠시 판단의 중심을 잃었다는 일화를 말해 주었다. "Peter became the kind of salesman who threw people off balance with a sincerity they were unaccustomed to."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46가와 6애비뉴에 있는 컨설팅회사 건물로 향했다. 입에 베어있는 간장과 와사비 냄새를 없애려고 껌을 나눠 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단숨에 10블락을 걸었다. 그와  건물밑의 스타벅스에서 헤어지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현열이는 2시간 반쯤 지나서야 나의 비좁은 사무실에 들어왔으나 손님이 있어서 오래있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내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들을  '이 분들이 네 학비대는데 일조하는 분들이다'하며 그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현열이는 "고맙습니다."하고 명쾌히 답례를 했다. 


4월2일(금) 

현열이가 오기 전

1주일이 지나서 오늘 다시 그 컨설팅회사와 2차 인터뷰를 하러 온다. 전에 있었던 메릴린치와의 인터뷰 결과는 현열이가 말해 주지않아서 마음만 상하게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오늘은 Good Friday이기 때문에 점심은 금식을 하겠다고 한다. 그에게 이제 선택은 몇개 밖에 남지 않았다.  


현열이가 온 후

캐주얼 복장의 현열이가 오피스에 도착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메릴린치 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아직 그 건은 살아있으며 FOREIGN CURRENCY TRADE에 오프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었던 Insurance 시험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A Cutoff이 67점이었다고 한다. 결국 모두에게 어려운 시험이었다. 현열이는 지난 주에 유펜대학생의회 대의원에 3년째 선출되었는데 의회내의 여러 포지션을 놓고 멤버들이 자기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보고 의회정치의 한 면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생의회의 인원이 약 30여명 되는데 한국인은 자기 혼자다. 인터뷰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나는 현열이와 회사까지 산책겸 함께 걸었다.오늘따라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나는 그가 건물을 들어가기 전 정말 Interviewer가 식사하자고 해도 안할거냐고 물었고, 그는 안먹겠다고 답하면서 건물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인터뷰 끝난 후 바로

현열이는 그가 프린스턴대학 북경 중국어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대원외고 출신 프린스턴대학생을 인터뷰에서 다시 만났다. 그도 현열이와 같은 직을 놓고 인터뷰했는데 반가웠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친구인데 캠퍼스가 달라서 사귀기 힘들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반가운 만남이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 관계를 키워나가도 괜찮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인터뷰는 2시간동안 30분씩 4명과 했는데 2사람은 케이스를 물어보고 나머지 두 사람은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케이스질문은 중간정도의 답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정도 기분일때 그는 항상 떨어졌다. 현열이는 필라델피아로 내려간지 2-3시간후에 미연방정부에 신청한 인턴잡이 되었다는 텍스트를 보내왔다. 이 인턴잡은 연방정부의 부서를 돌아가면서 아시안으로 고위 직에 있는 분들과 멘토링을 갖고 일하는 것인데, 원하면 미 연방 재무부나 Security Exchange Commission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나한테 기댈거리는 없어졌다는데, 한 숨 놓았다. 


인터뷰  끝난 후 5일 째

아침에 현열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욕에서 인터뷰했던 컨설팅회사에서 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연방정부에서 느긋하게 인턴을 하느냐, 세계적인 재정컨설팅회사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두 가지를 다했으면 좋은데 하나만 택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메릴린치 건은 살아있는데 자신은 기도하면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아래는 지난 일요일에 유펜에서 있었던 한국학생회 페스티벌에서 현열이가 친구들과 댄스를 하면서 보여준 영상이다.  나오는 여학생은 극중에서 현열이의 여자친구로 나온다. 태양이 부른 Wedding Dress를 뮤직비데오로 만든 것이다. 두 번째 영상은 페스티벌에서 perform 하는 모습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2j_FwxQLBSs


http://www.youtube.com/watch?v=y5Z88BoCc00


위의 공연이 있은 후 현열이는 약 500 여 유펜 한국학부학생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